“교원노조가 교육정책 간섭하는 건 매우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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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타임지 2008년 12월 8일자 표지에 실린 미셸 리 워싱턴 교육감의 사진.

미국 워싱턴DC의 교육계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다. ‘개혁’을 뜻하는 ‘reform’이란 영어 표기가 종종 ‘Rhee-Form’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계 교육감 미셸 리의 성을 차용한 것으로,‘리의 개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리 교육감의 개혁 드라이브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 12월 리 교육감을 표지모델로 선정한 시사주간지 타임을 비롯해 상당수 미국 언론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를 4일 워싱턴DC 교육청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취임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그간의 개혁작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 질이 좋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절대적인 기준을 들이댄다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러나 20개월(임기 4년 중 남은 기간) 뒤에 상대적인 평가를 한다면 많은 진보가 있을 걸로 본다. 개혁의 성과가 차츰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 ‘선생님 개혁’을 추진해 왔다. 훌륭한 선생님의 정의를 내린다면.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현저하게 높이는 사람이다. 그런 교사를 가려내는 데엔 여러 렌즈가 필요하다. 학생의 시험성적만 봐서는 안 된다. 교사의 프로정신과 교수법, 학생에 대한 헌신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교사가 훌륭해도 학생의 능력, 가정환경 이 다르면 성과도 달라지지 않나.

“좋은 교사는 어떤 나쁜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걸 직접 체험했다. (20대 초반) 볼티모어 (할렘파크) 초등학교에서 2, 3학년을 가르쳤을 때 첫해엔 성공적인 성과를 못 냈다. 그러나 둘째 해엔 다른 교사와 함께 학생을 수준별로 가르고 개별지도를 했다. 그랬더니 ‘능숙’ 평가를 받은 학생의 비율이 13%에서 90%로 급증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모두 위험한 지역에 있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도 좋은 교사를 만나면 불리한 환경의 문제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교사평가 제도의 골자는.

“교사는 스스로 창출한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걸 측정하는 잣대로는 학생 시험성적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는지, 긍정적인 교육환경을 조성했는지, 교실 문화는 어떤지 등을 보고 복합적인 평가를 하려고 한다.”

-교사노조와의 대화 여부와 상관 없이 새 평가시스템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평가 문제는 단체협상 대상이 아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 방식을 개발하는 건 교육청의 책임이다. 어느 분야든 좋은 조직은 성과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제대로 분별할 능력이 있다.”

-노조에선 불만이 큰 것 같다.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노조는 봉급 차별화와 정년제 폐지 등 교사의 책임성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 전통적으로 강력히 반대해 왔다. 그 앞에서 무너지면 개혁을 할 수 없다. 성과를 내는 교사는 보상을 받고, 무능한 교사는 퇴출돼야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사 정년제의 문제는 뭔가.

“무능한 교사를 교실에서 퇴출하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렵게 만드는 게 정년제다. 뉴욕에서 무능한 교사 1명을 퇴출하는 데 2년의 시간과 25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무능한 교사를 보호하는 게 정년제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다.”

-코넬대(정치학)와 하버드대(행정학 석사)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학업을 마친 뒤 비영리기관인 ‘미국을 위한 교육(Teach for America·TFA)’의 교사 양성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2년간 교사로 일해야 하는 과정인데 볼티모어 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그때부터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엔 TFA나 당신이 만든 ‘신교사 프로젝트(the New Teacher Project·TNTP·우수 교사 양성과 충원을 돕는 단체)’ 같은 기관이 없다.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가.

“미국은 한국과 달리 다양한 경로로 교사를 충원한다. TFA나 TNTP를 통하면 은행가나 변호사, 의사 등도 교사가 될 수 있다.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교육에 대해 충고한다면.

“노조가 정책 어젠다와 관련해 드라이브를 거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교사 노조의 본업은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교육정책을 세울 수 없고,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도 없다. 한국의 경우 어린 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너무나 큰 중압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만드는 건 건강한 교육이 아니다. 미국에선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트레스가 커진다. 대학에선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이 어린 학생에겐 자유와 여유를 주면서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미셸 리(38) 교육감=2007년 9월 워싱턴DC 교육감으로 발탁된 미국의 첫 한인 교육감. 미국에서 학생 1인당 교육예산은 가장 많으면서도 학력평가 결과는 최하위권인 워싱턴DC의 교육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2007년 말 그를 ‘2008년 주목할 만한 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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