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내렸더니 역시 잘 팔리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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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얼어붙은 분양시장에서 주택 수요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는 ‘가격’이다. 최근 시장 동향을 들여다보면 수요자들이 분양가가 싼 아파트에만 몰리는 현상이 뚜렷하다. 분양시장을 살리는 데 규제완화도 중요하지만 분양가 인하 약발이 더 잘 먹히고 있는 것이다.

대우건설이 서울 용산구에 분양한 효창파크푸르지오(효창3구역 재개발)가 지난 4일 서울 1순위 청약에서 평균 6대 1로 모든 주택형이 마감됐다. 서울 재개발 단지가 전 주택형에서 청약접수를 마감하기는 지난해 5월 성북구 래미안종암3차 이후 10개월 만이다. 줄곧 상승세를 보이던 강북 집값이 약세로 돌아선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강북 지역 재개발 단지들도 중대형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속출했다.

효창파크푸르지오는 견본주택을 짓지 않고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주택업계는 낮은 분양가가 주택 수요자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본다. 분양가는 지난해 11월 인근에서 나온 재개발 아파트보다 3.3㎡당 400만원가량 쌌다. 분양률 저조를 우려한 건설사와 재개발조합이 분양가를 스스로 낮춘 것이다.


지난달 말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에서 선전한 푸르지오·그랑블과 10년 공공임대 휴먼시아도 가격 경쟁력이 돋보였다. 푸르지오·그랑블 분양가는 2년 전 분양된 단지들보다 10% 이상 낮은 것이다. 휴먼시아 보증금은 2년 전 선보인 민간임대의 절반도 안 된다.

임대보증금이 20억원 안팎이었던 서울 한남동 옛 단국대 부지의 한남더힐도 주변 시세보다 싼 가격 덕에 고급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2년 반의 임대기간이 지난 뒤 감정평가 금액으로 결정되는 예상 분양전환(소유권 이전)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낮기 때문이다.

반면 규제완화 효과는 덜하다. 정부는 전매제한 기간 대폭 단축과 양도세 면제까지 내놓았지만 지난달 인천 청라지구 웰카운티는 적지 않게 미분양됐다. 청라지구는 한때 경제자유구역 개발 기대감에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였던 곳이다. 이 단지의 분양가는 이전에 분양한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었다.

주택 수요자들이 규제보다 가격에 민감한 것은 경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주택가격 전망도 불투명해지자 안전 위주로 청약하는 것이다. 요즘 기존 주택시장에서도 시세보다 훨씬 싼 급매물만 거래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대우건설 조재욱 차장은 “수요자들이 분양가가 싸면 집값이 더 떨어져도 별로 걱정할 게 없고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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