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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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또 여객기 추락사고로 60여명의 귀한 목숨이 사라졌다.

괌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악천후 착륙이라는 비슷한 형태의 사고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사고형태는 비슷하지만 대처하는 두 공항의 위기관리능력은 현저하게 달라 보인다.

미국령 괌도의 위기관리는 주지사가 이끄는 구조대 도착으로 시작됐다.

유가족의 원망까지 들어가면서 외부인 접근을 차단하고 먼저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전문수사요원이 오기까지 비행기 잔해 하나 손대지 못하는 일사불란한 엄격함을 지켰다.

그러나 내란이 끝난지 얼마 안된 캄보디아의 프놈펜 사고현장에선 구조대원들의 약탈에서부터 구조작업이 시작됐다는 한 사진작가의 목격담이 우리를 분노케 한다.

죽어가는 승객의 주머니를 뒤져 달러를 챙기고 시신의 옷까지 벗겨가는 공항구조대원이 있었다고 한다.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너무나 대조적인 두 공항의 사고수습 현장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를 되짚어 본다.

땅밑 상수도의 도장공사를 하던 인부 3명이 상수도 관 속에서 19일만에 숨진채 발견됐다.

상수도 관속에서 사고가 일어났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채 철수해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불과 2~3 지하에서 일하는 동료 작업원의 생사마저 등한히 할 만큼 이 사회는 나사가 풀렸든지 아니면 그만큼 매정해졌다는 증거가 된다.

그저께 소나기가 내렸다.

이튿날 물이 맑아져 물고기가 다시 몰려들었다는 탄천에 수십만마리 물고기가 떼죽음을 한채 떠올랐다.

소나기가 내린 틈을 타 인근 공장이나 하수처리장에서 유독성 폐수를 방류했다는 혐의가 당장 떠오른다.

폐수방류가 어제 오늘의 작태가 아니다.

산하를 폐수로 뒤덮고 동료 작업원의 생사를 십여일씩 방치하는 이 사회에 과연 내일의 희망이 있는가.

어른들만 이러한가.

내일의 희망이라는 초등학생 아이들마저 자신들을 놀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네살배기 아이를 웅덩이에 빠뜨려 숨지게 하고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동네사람들에게 은밀히 알리는 간교함마저 보이고 있다.

이 모두가 어제 하룻동안에 보도된 기사중 일부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틈만 보이면 남을 해치고 돌아서는 냉혹무비의 사회를 살고 있다는 절망에 빠진다.

철없는 아이들이나 어렵게 사는 막가는 인생은 그렇다고 치자. 이 사회를 주도하는 경제인이나 정치가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가.

한보사태 이후 기아사태가 경제를 혼돈에 빠뜨리고 1만7천여 협력업체의 멱살을 잡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지가 언제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정경유착으로 수조원 은행돈을 가망없는 사업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한 기업의 총수는 감옥에나 가 있지만 또 다른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기업가는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아직도 버젓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정경유착.노사유착이 몰고 온 추락사고에도 불구하고 구조대원은 보이지 않은채 제 목숨 구하기 위해 발뺌하고 실속차리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개점휴업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만나는 중소기업인마다 하소연하지만 그 어떤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가 이러하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정치가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모두가 잔머리 굴리면서 어떻게 하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할까가 그들의 일상사처럼 보인다.

경선결과 수용이라는 월하 (月下) 의 맹세가 무슨 소용이냐. 소나기만 내리면 폐수를 버리겠다고 모두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린다.

기업가든, 월급쟁이든 만나면 오늘의 부도막기와 내일의 직장 구하기에 여념이 없건만 우리의 정치가들은 자나 깨나 한표의 지지를 높이기 위해 얕은 수부리기에 골몰할 뿐이다.

TK지지가 급하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면을 들고 나온다.

위기상황의 나라를 구조하겠다는 큰 목소리나 정도 (正道) 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데 사고기 승객의 주머니를 훔치는 프놈펜 공항의 구조대원처럼 표 훔치기에 바쁘다는 인상만 남겨주고 있다.

이러고도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희망찬 21세기를 열어 보이겠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런 절망이 나 혼자만의 삐딱한 시각 탓일까.

<권영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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