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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살인한 천사’를 어떻게 할까 … 끝없이 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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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355쪽, 1만원

요즘 서점에 가보셨는지. 일본 추리소설 홍수다. 한국 추리소설? 별로 없다. 반짝 한류(韓流)가 물러난 자리를 도저한 일류(日流)가 밀고 들어오는 것 같아 더럭 겁도 난다. 하지만 어쩌리. 솔직히 수준차이를 인정하고 분발을 촉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에도가와 란포, 그러니까 히라이 다로(平井太郞,1894~1965)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다. 일본 탐정작가 클럽의 창설자이기도 한데 미국 추리작가 에드거 앨런 포를 존경하다 못해 이름까지 바꿔 버렸단다. 그가 1954년 사재를 털어 만든 ‘에도가와 란포상’은 일본 추리문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2005년 이 상을 받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30대 초반 커피점 주인이다. 젊은 아내가 푼돈을 노리고 침입한 13살 소년들에게 피살된 불행한 사내다. 그가 겪는 고통과 새롭게 밝혀지는 진실이 소설의 뼈대다.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책의 주인공 히야마에게는 아내의 죽음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게 있다. 그것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살인자들이다. 이들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살인한 천사?) 형식적인 교화조치만을 받은 뒤, 세상 속으로 슬그머니 녹아들어간 것이다. 선량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그저 기자들에게 이를 악물고 “국가가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범인을 죽이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는 것뿐이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뒤 4년 만에 기막힌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범인이었던 소년들이 하나씩 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왜? 누가?

경찰에 의해 범인으로 의심받는 히야마는 고통스럽게 4년 전의 사건을 돌아보기 시작하는데, 거기서부터 사건은 전혀 예기치 않던 반전과 놀라움을 향해 달려간다.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진실이 읽는 이의 허를 찌른다.

이중, 삼중의 반전을 준비한 것이 전형적인 추리소설 구조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품의 주제가 ‘소년범의 죄와 벌’쯤 되어서다. 한데 이 묵직한 주제를 재미와 솜씨 좋게 버무렸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진지한 사색을 요구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다. 사실은 제목인 ‘천사의 나이프’ 자체가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 흔히 어린이는 천사로 묘사된다. 하지만 누구라도 칼을 든 천사에게 선뜻 다가가고 싶진 않을 것이다.

1969년생인 작가는 고교를 졸업한 뒤 극단생활과 여행사 근무를 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퇴사했다고 한다. 재미와 문제의식을 갖춘 데뷔작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은 그를 보며 20여년의 기자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사회부에서 수많은 범죄들을 다뤘지만 글쎄, 얼마나 깊이 있는 성찰을 했던 건지…. 이 책은 숨은 그림 찾기식 두뇌싸움 위주의 정통추리를 즐기는 독자들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제법 묵직한 사회문제를 다룬, 일본 특유의 이른바 ‘사회파 추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 경찰, 법조인 그리고 특히 사회부 기자들에게는 ‘강추’다.

김종혁 문화·스포츠 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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