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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조선의 연예계’ 발칵 뒤집은 12명의 기생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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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기생들의 진지한 모습. 조선시대 기생은 예와 악은 물론 시문과 서화에도 능한 인물이 적지 않았다. [글항아리 제공]

나 자신으로 살아갈 길을 찾다
이지양 지음, 글항아리, 240쪽, 1만2000원

 조선의 여성, 그 중에서도 예인(藝人) 12 명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예인이란 예술가이면서 연예인이란 의미를 담은 표현인데 지은이가 조선조 기생의 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며 사용한 것이다. 황진이에서 취련이까지 이들의 기예와 작품, 생애를 정리했는데 대부분 정사(正史)에선 잊혀진 이름인 데다 낯익은 인물도 새로운 해석을 더해 꽤 읽을 맛이 있다.

황진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자 주도형 계약결혼’을 했던 인물로 평가됐다. 선전관 이사종의 노래에 반해 “마땅히 그대와 함께 6년을 살아야 겠습니다”하고는 이튿날 살림살이를 모두 이사종의 집으로 옮긴 다음 3년간 그 가족들의 생활비 일체를 부담하며 첩의 예를 다했다. 그 뒤에는 이사종이 다시 3년간 황진이 일가를 먹여살렸다. 기한이 차자 황진이가 “업이 이미 이루어졌으며 약속한 기일이 다 되었습니다”하고는 떠났다니 지은이가 그런 평가를 할 만도 하다.

18세기 함경도 함흥에서 활동한 기녀 취련의 이야기는 애닯다. 함경도 북평사로 부임한 서명빈을 만나 연분을 맺었으나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간 그에게선 감감무소식이라. 취련은 천리길을 마다 않고 한양으로 임 찾아 왔으나 서명빈은 가문이나 벼슬 등 지킬 게 많았던 처지라 취련을 집으로 데려 가지 못했다. 이에 취련이 지었다는 시가 ‘온 밤 그리운 마음에 머리는 눈처럼 희었는데 창에 가득 밝은 달 애 끊는 때로구나(一夜想思頭盡雪 滿窓明月斷腸秋)’란 절창이었다.

이처럼 당대의 명기(名妓)들은 단순한 풍류의 장식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8세기 말 일지홍은 요리에서 바둑까지 능통한 인물이었는데 “제 마음에 맞지 않으면 금을 광주리에 담고 구슬을 말로 퍼가지고 매일 찾아온대도 어떻게 제 뜻을 꺾을 수 있겠냐”고 했을 정도로 심지가 굳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시 짓는 솜씨도 뛰어나 당시 선비들이 한시 학습의 필수교재로 삼았던 『당시품휘(唐詩品彙)』에 대해 “재치와 사고력이 없어서 볼 것이 없다”고 혹평했다니 그 자부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하층 천민이었기에 제대로 된 기록이 없는 이들의 삶을 복원해낸 귀한 책이면서, 조선의 여성문화사를 더듬어 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기도 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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