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술 건강기금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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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민에게 건강에 대한 가치와 책임의식을 함양하도록 건강에 관한 바른 지식을 보급하고 스스로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증진한다. "

이것은 지난 95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건강증진법의 목적이다.

사실 누구나 건강을 유지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정부가 이를 선도하고 지원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 국민건강을 걱정하는데는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료보험에서 일부를 충당하고, 담배 한 갑에 2원의 건강기금을 부과해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담배와 같은 건강 유해물질에 일종의 벌과금을 부과하고 이를 기금으로 조성해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활용하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담배 뿐만 아니라 술에도 건강기금을 징수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술에 건강기금을 부과하는 것은 몇가지 이유로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술이 국민건강증진법상의 요건인 건강유해물질인가 하는 점이다.

폭음 등 잘못된 음주문화가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의료계에서조차 술의 건강유해 여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공적 비용을 기금이라는 형태로 징수하고 있는 제도의 문제다.

국민들은 세금을 통해 공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세금은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과세요건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부과하는 것이다.

반면 기금과 같은 부담금은 공공사업의 경비로 충당하기 위해 해당 사업으로 인해 특별이익을 받는 사람에 대해 필요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금 등이 조세저항을 피하기 위한 행정편의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의 조세부담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은 누누이 지적돼 왔다.

더욱이 각종 기금의 운영이 부처마다 독립된 운용으로 예산외의 예산이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통제도 어렵기 때문에 항상 제도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편법 (便法) 의 성격이 강한 기금보다는 일반예산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셋째, 기금이 제품가격으로 전가되는 문제다.

담배 한갑에는 담배소비세.교육세 등 세금이 제품가격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에 덧붙여 2원의 '건강기금' 이 부과되고 있다.

술에도 마찬가지로 맥주 한병에는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가 제품가격의 57% 가량 된다.

여기에 건강기금마저 부과된다면 이것은 고스란히 제품가격으로 전가돼 애주가라는 이유만으로 부담이 늘게된다.

넷째, 술에 부과되는 건강기금은 주세율에 대한 국제적인 통상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유럽연합 (EU) 은 지난 4월 소주와 양주간의 주세율 차등을 이유로 세계무역기구 (WTO)에 우리나라를 제소했다.

복지부는 모든 주류에 건강기금을 부과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알콜 도수 17도 이상의 독주에만 부과한다는 방침인 모양인데, 이 경우 통상마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상의 문제를 고려할 때 술에 건강기금을 부과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경동 <한국경제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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