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무질서 속의 질서 … '여기는 이탈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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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한 미녀가 낡은 피아트를 몰고 간다.

노출심한 옷에 헤프게 웃는 모습에서 조신한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차창으로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신호따위는 무시하고 간다.

횡단보도도 있으나마나. 그렇지만 괜찮다.

여기는 이탈리아니까. 유니버시아드를 취재하는 각국 기자들은 '여기는 이탈리아' 라는 말이 입에 뱄다.

질서고 공중도덕이고 다 필요없는 이 엉터리같은 나라가 G - 7의 멤버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청계천이나 퇴계로에서 운전을 익힌 한국인에게 이탈리아의 이같은 운전관행은 별로 이상할게 없다.

"언어와 음식만 빼면 거의 홈그라운드" 처럼 여겨지기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만만하게 여기기는 외국사람들도 마찬가지. 중국 기자도 미국 기자도 프레스센터의 금연요청을 무시하고 담배를 꺼내 문다.

불법유턴은 노랑머리 기자들이 더 잘하는 것같다.

젊은 기자들은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처럼 배지와 열쇠고리를 들고 예쁘장한 자원봉사자 아가씨들에게 달려든다.

물론 여기에는 '코리아' 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낡은 피아트는 길건너는 행인 앞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골목이 5~6개나 겹치는 교차로에서도 경적은 울리지 않는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길을 물으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준다.

목적지까지 안내해 준 후 자기 길을 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원하는 것만을 본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두 한국식 '양심 냉장고' 를 탈수는 없겠지만 이탈리아식이라면 냉장고가 모자랄 것이다.

어느 순간 혼란의 중심을 흐르는 힘의 윤곽이 드러날 때 '여기는 이탈리아' 라는 말은 입에 담기 어려워진다.

〈카타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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