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지폐로 산 복권 당첨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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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로 복권을 샀다가 덜컥 당첨이 된다면 그 당첨금을 받을 수 있을까.

경찰이 제과점 여주인 납치범에게 건넸던 수사용 모조지폐가 복권 구입에도 쓰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같은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5시께 서울 종로의 한 복권방에서 한 남성이 복권을 구입하며 건넨 1만원권이 문제의 그 위폐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일단 복권을 산 문제의 남성이 납치범으로 지목된 정승희(32)씨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그가 산 복권이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지방경찰청과 나눔로또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위폐나 수사용 모조지폐로 산 복권이 당첨된 사례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런 사례가 없어 당첨금과 관련된 추후 진행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복권이 당첨된 경우 복권 소지자가 누구이든(판매 금지 대상인 미성년자 제외), 취득 경위가 어떻든 관계없이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나눔로또의 한 관계자는 “만약 당첨된 복권을 소지한 사람이 이미 당첨금을 찾아갔고, 그 사람에 대한 경찰 수사가 완료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별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즉 취득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다면 일단 지급하고 난 뒤에 민·형사소송 등의 절차를 밟아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의 사례에서 문제의 남성이 납치범 정씨라고 밝혀지더라도 그가 당첨된 복권을 들고 나타난다면 우선은 당첨금을 지급한다는 얘기다. 그가 갖고 온 복권이 실제로 위폐로 산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수배중인 정씨가 당첨이 됐다고 하더라도 당첨금을 수령하러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씨가 경찰에 잡힐 것을 우려해 제 3자에게 복권을 넘겨 당첨금을 수령한다면 어떨까. 이 역시 일단 당첨금을 지급하고 추후 범죄 인과관계가 드러나면 몰수 대상이 된다. 범인과의 관련성을 입증할 책임은 경찰에 있다. 따라서 위폐로 로또를 구입한 것이 확인된 지난 21일 종로의 복권 판매소에서 비슷한 시각에 로또를 구매한 사람이 만약 로또에 당첨 될 경우 경찰의 조사대상이 될 가능성은 있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복권은 일종의 무기명 채권이기 때문에 복권 소지자 누구든 당첨금을 받을 수 있지만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당첨금은 전액 국가에 귀속된다”며 “제 3자가 당첨금을 수령했을 경우 계좌추적 등을 통해 최초 당첨자와의 인과관계가 드러난다면 이 역시 몰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위폐는 범행 도구의 하나이기 때문에 범인이 당첨금을 다 썼더라도 이를 갚을 때까지 그 사람의 전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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