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 떨어질 땐 수출로 …” 윤증현의 고환율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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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증현(사진)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 문제를 잘 활용하면 수출 확대의 발전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다. 윤 장관은 “위기 극복의 근간인 수출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외환시장 개입 여부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에선 정부가 원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여기엔 그럴만한 정황이 있다. 전날 달러당 원화가치는 10년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윤 장관은 청와대 서별관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진동수 금융위원장과 경제금융대책회의를 했다. 이어 이날 아침 기자들 앞에서 최근 환율 움직임에 대한 인식을 표출한 것이다. 결국 윤 장관의 발언은 원화가치에 대한 경제팀 수뇌부의 조율된 인식으로 비쳤다.

원화가치 하락엔 이중성이 있다. 우리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에 도움을 주지만, 수입 물가가 오르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는 등 부작용도 크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화가치가 너무 가파르게 떨어져 경제에 큰 부담을 줘 왔다.

그럼에도 윤 장관이 유독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현실적으로 원화 값의 급락을 막을 뾰족한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동유럽발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외부 요인이 작용했다지만 내부의 한계도 있다. 외환보유액이 2017억 달러(1월 말 기준)에 달하지만, 2차 금융위기 조짐이 보이는 판에 함부로 헐어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도 이미 절반 이상 써 버렸다. 한·일 스와프 자금을 갖다 쓰기엔 외부의 시각이 부담스럽다. 지금처럼 시장이 달아올랐을 때는 개입해 봤자 달러만 축내기 십상이다.

이를 고려해 윤증현 경제팀은 일단 시장을 달래가면서 비상시에 대비해 실탄을 아끼는 수비형 전략을 택한 셈이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원화 값이 급락하지만 않는다면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달러당 1500원대로 떨어진 뒤에도 원화가치가 계속 저공비행을 할 경우 이 같은 ‘불개입’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웬만한 리더십으로는 경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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