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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불법 판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근 검찰이 PC통신망에 '메일 폭탄 (Mail Bomb)' 을 보내 통신망을 마비시킨 혐의로 고등학교 2년생 金모.吳모군을 불구속 기소한 사건을 계기로 PC통신 환경공해에 대한 경각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사회의 거울' 로 떠오른 PC통신 사이버공화국에는 메일폭탄과 같은 신종 폭력이 활개 치는가 하면 현실세계를 방불케하는 언어폭력이나 각종 사기 (詐欺).테러사건이 익명 (匿名) 이라는 미명아래 시시각각 일어난다.

PC통신상의 사이버 공해, 무엇이 문제고 대책은 없는지 짚어본다.

◇ 비뚤어진 스타 심리 = '튀는 글이 영웅을 만든다.

' PC통신 게시판에는 이같은 주장을 담은 글이 자주 올라온다.

스타가 되려면 거침없이 글을 쓰라는 얘기다.

'창녀론' 을 펼친 김완섭씨나 원색용어로 남자들을 비난했던 신정모라씨, 자신의 성경험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양은영씨는 스타가 돼 사이버 작가로 데뷔했다.

이같은 영웅심리 모방이 이어지면서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은 이용자번호 (ID) 를 수시로 바꿔 신분을 감춘채 대화방을 도배하기도 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불건전정보 단속 결과 대화방내 도배.욕설등 인권침해가 전체의 60%인 1천7백93건으로 나타났다.

◇ 사이버 불륜 = PC통신이 한국판 중매쟁이 '월하노인' 으로 부각되면서 탈선의 온상 (溫床) 이 되고 있다.

대화방에서 만나 결혼한 사이버 커플도 1백여쌍이나 되지만 불륜이나 사기행각으로 이어져 쇠고랑을 찬 경우도 있다.

회사원 강모씨 (33) 는 비밀대화방에서 20대 여성과 6개월째 밀어를 나누고 있다고 토로한다.

상대방도 자신을 유부남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통해 별 문제가 없다는 것. 지난해 남자 이모씨는 '사이버 꽃뱀' 으로 둔갑해 같은 남성들로 부터 거액을 가로챘는가 하면 총각이라 속여 통정하다 덜미를 잡힌 사건도 발생했다.

◇ 음란물.불법복제 = 비밀대화방은 음란물 사각지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빨간 마후라' 비디오의 경우 이곳을 통해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을 정도다.

프로그램 불법복제도 허다하다.

서울지검은 최근 대학생 崔모씨등 16명을 무더기 구속했는데 이들이 PC통신으로 판매해 챙긴 불법 CD롬타이틀 수익만 3억2천여만원에 이른다.

◇ 사생활 침해 = 이용자들은 제품광고.학원안내문등 전자우편이나 전화공해에 시달린다.

각 PC통신사는 약관에 개인신상정보는 본인 승낙 없이 타인에게 누설.배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는 다양한 경로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체들은 회원정보를 별도의 전산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해커들이 악덕업자와 손잡고 정보를 빼낼 경우 속수무책이다.

동호회 명단이나 정보제공업자 (IP) 들이 갖고 있는 회원자료의 경우 PC통신사가 유출 책임을 지지 않는다.

◇ 통신검열 = 지난해 한총련의 PC통신 폐쇄이용자그룹 (CUG) 이 봉쇄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 CUG는 원래 개설자만이 폐쇄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검찰이 이례적으로 영장을 발부해 압수수색을 단행, 언로를 막아 버렸다.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16조에는 ▶범죄행위 목적 전기통신 ▶반국가적 내용 ▶미풍양속 침해 행위등에 대한 글은 제재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사안별로 해석의 잣대가 명확치 않다.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법적 조항은 없는 상태.

◇ 테러공포 = 불특정 다수에게 수만건의 전자우편을 동시에 보내 PC통신사의 전자우편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메일 폭탄인 '스팸메일 (SPAM MAIL)' 은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지난 6월말 하이텔 시스템이 10만여통의 스팸메일을 당해 6일간 마비된데 이어 7월초에는 나우누리도 같은 융단폭격을 받았다.

테러혐의로 적발된 金모.吳모군은 "장난삼아 메일을 보냈다" 고 하지만 해커들이 악의적으로 폭격을 가할 경우 통신사들은 시스템복구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한다.

미 국가안전국 (NSA)에 따르면 93~96년동안 세계적으로 은행.증권거래소등이 40여건의 사이버테러를 당해 4천8백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 대책은 없나 = 이같은 사이버 환경공해는 자연보호운동처럼 범국민 운동이 전개되지 않는한 단속만으론 한계가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익명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비밀 대화방이나 압축파일로 정보를 주고 받으면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PC통신 가입시 신상을 철저히 확인하고 ID를 실명 (實名) 으로 발급하고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정보통신학과 정진욱교수는 "한글이나 영문으로 ID를 발급하는 실명제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며 "ID가 자신의 얼굴인 만큼 욕설이나 비방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청소년문화연구소 김옥순 (金玉順) 박사는 "사이버 공해가 현실세계에 막대한 폐해를 몰고오고 있다" 며 "전기통신사업법에 구체적인 조항을 명시하고 PC통신사들의 책임한계등을 새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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