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외교관 망명사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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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 외교관들의 잇따른 망명은 과연 북한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인가.

북한뿐만이 아니라 세계각국의 경우도 국가체제나 정권의 붕괴를 눈앞에 두고 해외에 도피처를 택한 외교관들의 사례는 적지않다.

또한 외교관들은 바깥세상에 밝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리며, 해외에 주재하면서 조국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외교관들의 망명이야말로 체제붕괴의 전단계로 자주 간주되고 있다.

중국이 89년 6.4 천안문사태로 국가소요, 나아가서는 심각한 체제 불안정의 국면을 보일 때 홍콩의 '붉은 총독' 이라는 별칭으로 중국의 외교 첨병역을 맡았던 쉬자툰 (許家屯) 신화사 (新華社) 홍콩분사장이 해외망명을 결행했다.

당시 신화사 홍콩분사는 사실상 홍콩의 중국대사관 기능을 담당했고 분사장은 대사의 역할을 수행했던 상황이라 許의 망명은 중국과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중국은 물론 유혈진압으로 천안문사태를 짧은 기간에 수습했으나 許의 망명은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쏟아졌던 부정부패와 민주화 욕구의 분출로 휘청거렸던 당시 중국의 상황을 충분히 대변할만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90년5월 미국에 망명,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許는 이후 중국 권력층의 내부사정과 홍콩반환을 앞둔 중국과 영국의 갈등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해외의 중국통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정보통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유노조의 결성과 이에 대한 정부의 탄압으로 폴란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던 지난 81년12월 주미 (駐美) 폴란드 대사 로무알트 스파소프스키 (당시 61세)가 부인과 딸 내외를 데리고 미국에 망명했다.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의 지지자였던 스파소프스키는 정부의 바웬사 체포등 자유노조 탄압이 극심한 양태를 보이자 이에 저항하기 위해 미국 망명을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파소프스키의 망명은 같은 달에 고위급 외교관 12명의 단체망명과 주일 (駐日) 대사 지스와프 루라시의 망명으로 이어져 결국 폴란드와 동구권의 체제붕괴를 앞서 예고해줬던 것이다.

걸프전에 이어 미국의 경제봉쇄로 체제유지에 허덕거리던 이라크도 주 캐나다 대사 후샴 알 샤위와 튀니지 대사 하미드 알완 알 주부리가 영국에 망명함으로써 곤욕을 치렀다.

물론 후세인은 아직도 철권정치로 이라크를 통치하고는 있지만 95년말엔 사위인 후세인 가멜 하산 중장과 그의 동생이 요르단으로 망명하는등 고위층의 망명이 끊이지 않고 있어 체제가 계속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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