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동독서기장 크렌츠 6년6월 실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베를린 = 한경환 특파원]독일 베를린 지방법원은 25일 옛동독의 베를린 장벽 탈주자에게 사살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아온 에곤 크렌츠 (60) 옛동독 공산당서기장에게 6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법정구속 했다.

판결은 95년11월부터 시작돼 1백16번째 열린 공판에서 내려졌다.

이날 동베를린 공산당위원장이던 귄터 샤보스키 (68) 와 공산당 경제담당 귄터 클라이버 (65) 등 정치국원에게는 각각 3년형이 선고됐다.

이로써 장벽탈주자 사살 명령과 관련한 옛동독 고위인사 재판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크렌츠는 지난 18일 최후 진술에서 "장벽탈주자에 대한 총격으로 사망자가 생긴 것은 유감이지만 사살 명령을 내린 적은 없었다" 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장벽관리는 당시 소련측 관할이었으며 현지 군부대 지휘관이 알아서 처리했다" 고 소련에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나 요제프 호흐 재판장은 "동독 장벽통치는 옛 소련에 의해 강제된 조치가 아니었다.

정치국원들은 국경수비대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크렌츠는 옛동독시절 다른 정치국원처럼 수십년동안 동독의 주권독립을 강조했으면서도 결국 동독은 소련의 명령을 받아 시행한 꼭두각시 정권으로 묘사하는 모순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샤보스키는 "목적을 위해 탈주자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며 옛동독의 체제 실패를 시인하고 정치적.도덕적 잘못을 뉘우쳤다.

클라이버는 "경제문제만 담당했으며 장벽탈주자 사살 명령과는 관련이 없다" 며 무죄를 주장했다. 판결을 내리는 순간 크렌츠등은 별다른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곧바로 수감될지에 대해선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다.

법원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이날 아침 일찍부터 베를린 모아비트법원엔 방청객들이 몰려와 혼잡을 빚기도 했다.

한편 이들과 함께 재판을 받기 시작한 쿠르트 하거 옛동독 공산당 이데올로기 담당, 호르스트 돌루스 행정담당,에리히 뮈켄베르거등 3명은 고령과 신병을 이유로 도중에 재판이 면제됐다.

장벽탈주자 사살 명령과 관련해 94년 옛동독의 하인츠 케슬러 (76) 국방장관은 7년6개월, 프리츠 슈트렐레츠 (70) 국방차관은 5년6개월, 한스 알브레히트 (77) 옛동독 공산당 줄시 (市) 지구당위원장은 5년1개월의 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의 후임으로 89년10월 서기장이 된 크렌츠는 당시 동독 안보책임자였다.

그는 이 재판에서 "승자의 정의" "매카시 선풍" 을 주장하며 정치보복적 성격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아무리 당시엔 사살 명령이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사살 명령은 반인륜적인 처사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독일이 분단되고 나서 통일될 때까지 베를린장벽등으로 탈출하려다 사망한 동독인은 9백16명에 달하며 1만여명이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돼 수감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