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클럽,지구촌 구석 훑는 문화사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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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국 문화는 다양한 얼굴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숨쉬고 있다.

LA의 한인들과 옌볜 (延邊) 조선족처럼 우리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삶도 있지만 캄보디아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곳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자취는 아득하다.

같은 뿌리임에도 갈래갈래 나뉘어 사는 모습들. 그 닮은 얼굴들을 확인해가는 작업은 설레는 일일 게다.

빈둥클럽 -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남아있는 우리 문화의 자취를 찾아가는 모임이다.

지난해 10월 첫 모임을 가진 후 알음알음으로 70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시인.화가등 예술인들을 주축으로 갖가지 직업에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의 문화교류를 추진한다.

또 이를 기반으로 그 나라 사람들과 민간차원의 교류도 벌이고 있다.

이런 진지한 모임에 하필 '빈둥' 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간사로서 이 모임을 이끌어 온 시인 겸 소설가 조해인 (45) 씨의 말을 듣자.

"빈둥은 베트남어로 '먼 동쪽' 이란 뜻이며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은 우리 모임의 출발지가 베트남이었거든요. "

클럽 회원들의 관심사를 따라 베트남을 첫 활동지로 골랐다.

그리고 지난 6월말 호치민과 사이공강 일대를 돌며 4박5일간 첫 행사를 가졌다.

특히 유람선에서 가진 선상 문화공연에는 현지 한인 80여명과 베트남인 1백50명 가량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이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사물놀이. 꽹과리의 신명나는 가락에 모두들 흥겨워했고, 베트남전쟁의 한을 풀기 위해 마련한 '해원 (解寃) 굿' 이 진행되는 동안 현지 교민들은 물론 현지인들까지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베트남의 문화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오랜 전란의 후유증 탓이겠지만 그곳에선 '문화' 란 걸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척박하다는 얘기죠. 춤과 노래등을 열정적으로 즐기는 기질을 가진 베트남 사람들이었지만 딱히 문화활동이라고 부를 만한 실체를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

그 땅에서 우리 예술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실이 절반의 성공이다.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말한다면 점수는 더 후해질지 모른다.

이들은 다음 행사로 연말쯤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족 사람들을 초청한다.

올해는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이 37년 강제로 이주된 지 60주년이 된다.

이를 되새기는 의미에서 손 세르게이라는 고려족 3세 인형극 연기자를 초청해 국내 공연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해 삼성포토갤러리에서 가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일보' 사진기자인 안 윅토르 이바노비치 (50) 의 사진전이 자극이 됐다.

타슈켄트 주변의 한인 마을은 하나둘 도시를 떠나는 2.3세들로 인해 차츰 스러져 가는 형편이다.

거기에 무슨 활력을 불러 일으킬 방법이 없을까. "우리의 활동이 각국과의 교류 활성화로 이어져 결국 나라간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습니다.

국교 수립의 역사가 짧은 나라일수록 민간의 문화교류 활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로의 적대감이나 이질감을 무너뜨릴 수 있죠. "

이들은 매달 한번씩 정기모임을 통해 앞으로의 계획등을 논의한다.

다음달 초에 가질 만남에선 호치민 대학에서 공부하는 한인 2세와 베트남 예술인 초청등에 관해 협의할 계획이다.

아울러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문제도 상의한다.

이들 두 나라는 베트남 문화가 '집단' 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개인주의적' 인 성향이 강해 또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할 터다.

"회원 가입에 제한은 없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민간활동이니 만큼 기본정신을 벗어나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

사이공강의 첫 행사에 고무받은 빈둥클럽 멤버들의 마음은 좀 바쁘다.

강주안 기자

빈둥클럽

회원 : 시인 박종수, 화가 강찬모등 70여명

목적 : 외국에 우리문화 알리고 교류하기

활동 : 연말께 우즈베키스탄 고려족 초청 '인형극' 공연

베트남 가수와 한인2세 초청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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