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마약 '아이도저' 체험 동영상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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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쳐]

이어폰을 귀에 꽂은 한 청년이 눈을 감고 땅바닥에 누워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어깨를 심하게 떨더니 팔과 다리를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곁에 있던 동료들은 깜짝 놀라 그를 살펴보지만 청년은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심하게 부르르 떤다. ‘사이버 마약’으로 불리는 ‘아이도저(i-doser)’ 체험을 담은 동영상 속 한 장면이다.

최근 사이버 마약을 해봤다는 체험 영상이 UCC 사이트를 통해 네티즌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직접 해봤다는 글에 이어 체험 장면을 담은 동영상까지 퍼지고 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검색창에‘i-doser’를 입력하면 무려 300여 개의 영상이 뜬다. 국내 네티즌들도 체험 영상을 인터넷 주요 커뮤니티에 퍼나르고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영상이 퍼질 경우 무분별한 모방 사례가 속출할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아이도저’라는 사이버 마약은 특정 주파수로 뇌파를 자극해 마약 같은 환각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불안증, 항우울증, 항염증, 진정제, 마약 등으로 분류된 73개의 MP3 파일들이 해외 사이트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심리 치료 파일도 있지만 코카인이나 모르핀, 헤로인, 마리화나 등과 같은 마약 효과를 준다는 파일도 있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마약류로 분류된 28개의 파일이다.

[유튜브 캡쳐]

“몇 가지 마약 파일들을 체험해봤지만 변화가 없었다”“상술에 불과한 것 같다”며 파일의 마약 효과에 의혹을 제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체에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는 “아이도저는 소리 주파수를 변동시켜 앰뷸런스의 사이렌 효과처럼 감정 변화를 강하게 일으킨다”며 “이런 소리를 계속해서 10분 이상 들으면 신경질이나 폭력적 성향이 나타나고, 소리를 중단해도 한동안 그 소리가 연상되거나 이명 현상으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삐’하는 순음(純音ㆍpure tone)을 사용해 양쪽 귀에 번갈아 자극을 주기 때문에 머리가 멍해진다”며 “사이버 마약을 ‘마리화나’나 ‘코카인’등으로 분류한 것은 소리의 세기나 강도, 높낮이에 따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배 교수에 따르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듣기 싫다’며 꺼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심신이 약한 사람들에겐 십중팔구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심리가 아주 불안정해지고 정신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미국에서는 인체에 유해하다는 판단에서 학생들이 아이도저 파일이 담긴 MP3를 가지고 등교할 수는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아이도저 사용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음파의 유해성을 입증하거나 이를 음란물이나 마약으로 규정할 법적ㆍ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현재로선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과대광고에 해당할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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