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또 하나의 話頭 '위기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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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초봄의 기운을 담은 태평양의 훈풍도 추기경 (樞機卿) 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지는 못했다.

자작곡 (自作曲) '하느님 난 당신을 알아요' 를 열심히 불렀으나 마음은 역시 우울했다.

지난 3월초 로스앤젤레스의 여행지 숙소에서 한국일보와 회견한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은 그래서 오늘의 이 위기를 기회로 삼자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지난 3월이라면 한보의혹으로 날이 새고 현철비리로 밤이 지던 시절, 나라 전체가 이른바 총체적 위기로 빠져든다고 수군거리던 때의 얘기다.

오죽 답답했으면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약삭빠른 구호성 처방까지 인용하고 싶었을까. 그것이 불과 다섯달 전의 일. 지금은 일의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사태는 더 위중해졌다.

몇개 기업군이 또 무너지고, 한보보다 더 큰 기아 (起亞) 의 운명이 풍전등화 (風前燈火) 격이 되더니 이제는 신용의 상징인 금융기관마저 부실해지고 있다.

당시 추기경은 의혹을 제기할 때는 모름지기 증거를 제시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지금 제기되는 병역기피설, 월북 의혹설, 후보 전열 (戰列) 대란설 등은 증거와는 거리가 먼 비방 (誹謗)에 가까운 것들 아닌가.

한국 정치의 행보가 매일 이같은 도청도설 (塗聽塗說) 의 뜬 소문에 좌우되고 있다니 (한심하구나 한심해) . 추기경은 또 대통령을 깎아 내리기만 하면서 그에게 나라 살리기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 아니냐고 걱정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제기되는 국가위기설은 대통령 한사람 차원이 아니라 지도층 전체의 리더십을 문제삼고 있는 것같다. 한마디로 쓸만한 사람도 없고 믿을만한 곳도 없다는 불신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지도자에게 힘을 모아 주자는 호소라니 (그런 말은 광풍 앞의 촛불과 같다) .□ 위기를 관리해야 할 리더가 리더십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과연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사회와 국가가 존속하는한 영원히 계속될 이 질문에 요즘 활발하게 답을 내는 사람이 있다.

한때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경영 컨설턴트 리처드 파슨이 바로 그 사람. 그는 '부조리의 관리 (Management of the Absurd)' 라는 책 ( '反리더십' .김인호 역)에서 리더십의 통념적 이론을 역설로 뒤집고 있다.

그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가 당면한 리더십의 위기를 진단해 본다.

"그럴듯한 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늠름한 사나이가 바로 지도자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지도력은 집단의 강점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팀장.어릿광대, 또는 어머니가 이런 역할을 잘 합니다."

"한국에선 무슨 일만 터지면 지도자는 무얼 하고 있나. 정부가 나서라 하는데요."

"지도자는 전능 (全能) 의 사람도 전문가도 아닙니다.

지도자는 사람들의 지식.기술.창의력 등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지도자에게는 겸손이 배어 있습니다."

"혹시 양산박 (梁山泊) 의 두령 송강 (宋江)에게 왜 급시우 (及時雨) 라는 별호가 붙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하버드대 교수라고 뻐기나) 그런데 경험이 많은 지도자일수록 직관을 신뢰한다는 당신의 충고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요. 감 (感) 이 발달했다는 지도자 때문에 혼쭐이 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의 발달과 위기관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더군요."

"경험이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보라는 뜻입니다.

직관은 예지 (叡智) 라고나 할까요. "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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