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뮤지컬 '명성황후' 미국 무대서 성공적으로 막 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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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난 15일 저녁8시 (현지시각) 미국 뉴욕 링컨센터내 주립극장 (2천8백석)에서 개막된 뮤지컬 '명성황후' (이문열 원작.김희갑 작곡.윤호진 연출) 는 국산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첫 진출이란 점에서 '역사적' 이란 표현이 지나치진 않다.

단지 대관 계약부터 공연까지 3~4개월이 못되는 짧은 준비기간 탓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다행히 개막공연 이후 이곳의 평이 예상보다 나쁘지는 않아 앞으로 브로드웨이의 블록버스터 (흥행대작)에도 도전해 볼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받은 셈이다.

이번 '명성황후' 의 미국판은 95.96년 초연 (관객 10만동원) 때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지극히 서술적이었던 초연과 달리 극적인 장치도 많이 보였고, 특히 사물놀이와 굿등 한국적인 리듬과 춤을 삽입해 우리의 정체성을 살리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했다.

우선 이번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현지 오케스트라의 기용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24명의 연주자를 모아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는데, 다행히 배우들의 적응력이 좋아서 음을 놓치는 등의 큰 실수는 없었다.

그러나 극중 사물놀이와의 협연은 연습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명성황후' 는 초연때와 달리 주역배우를 정통 성악전공자로 발탁해 이곳에 오기전부터 '논란' 이 있었다.

때문에 자연히 명성황후역의 김원정 - 이태원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나 그 결과는 두가지로 나타났다.

이들의 장점은 역시 가창력. 김원정이 훨씬 오페라적이었다면 브로드웨이 ( '왕과 나' 에 출연)에서 활동경험이 있는 이태원은 대중취향의 창법을 잘 구사했다.

그러나 막상 노래만 잘했지 명성황후의 외적인 이미지나 관객을 휘어잡는 주역배우로서의 카리스마는 떨어졌다는 평이다.

무엇보다도 한국문화의 특질을 잘 보여준 것은 김현숙의 의상과 박동우의 무대였다.

특히 무려 6백벌이 동원된 의상이야말로 과거 우리의 궁중문화와 서민문화의 특징을 드러내주는 키포인트가 됐다.

각색의 약화로 비롯된 구성상의 허점을 만회하고 남을만큼 의상은 대단한 볼거리를 제시했다.

주역배우의 고음역을 살리고자 재편곡된 김희갑의 음악은 초연때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피날레곡인 '백성이여 일어나라' 는 주제의식을 집약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출자의 애매한 역사 의식은 여전히 지적받아야 할 부분. '미우라' 를 중심으로한 사무라이들의 '거사' 모의 장면과 실행과정이 너무나 멋있고 당차게 그려져 명성황후의 거룩한 죽음의 가치가 퇴색되고 마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이번 공연은 역사적이란 명분에 얽매여 출연자와 스탭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한 남아의 기개를 잃지 않고 낭인과 대적한 홍계훈역의 김민수와 유희성.이희정의 당당한 연기는 갈채를 받아 마땅했다.

뉴욕 =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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