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개지 않은 이불 위에서 소주 먹고 야구 보는 공지영의 맨얼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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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설가 공지영씨는 수필집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에서 “집착과 상처를 버리는 곳에 고이는 연둣빛 자유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운동을 통해 몸의 근육을 발달시키듯 마음을 원하는 대로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하라”고 권한다. [중앙포토]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상처를 받고, 생명이 가득 찰수록 상처는 깊고 선명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상처를 버리기 위하여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인용이 길었다. 소설가 공지영(46)씨가 지난해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수필을 모은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한겨레출판)를 펴냈다. 인용 대목은 수필집을 관통하는 키워드, 책에 실린 글을 쓸 당시 공씨의 내면 심리를 드러낸다. 요컨대 상처를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초래한 자신 안의 욕심·집착과 마주함으로써 얻은 평정 상태에서 나온 소출이 이 수필집이다.

공지영씨는 날씨도 고기압이나 저기압 같은 거대(巨大)한 개념이 아니라 우산·외투·찻잔·장갑 등 일상의 세목들을 통해 경험된다고 밝힌다. 그 때문에 역사·환경·정치 등 큰 얘기보다 그것들의 파생물인 “풀잎, 감나무, 라디오 프로그램, 반찬, 세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껏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유머를 섞어서. 공씨와 끈끈한 관계인 ‘한 백 명쯤’의 사람들이 수필집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채운다는 점에서 ‘공지영식 백인보(百人譜)’라고도 할 만하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공씨가 풀어 놓는 사람과 일상의 이야기는 책 제목대로 가볍게 읽힌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이라는 ‘평범치 않은’ 이력을 털털하게 소개하는 공씨는 하느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지?”라고 묻는다면 “그건 여성지(女性誌)입니다”라고 대답하겠노라고 능청떤다. ‘백인보’의 주인공 중에는 공씨가 산골의 겨울생활을 걱정하자 “너구리, 오소리, 멧돼지, 산토끼들은 정말 힘들지”라고 답했다는 엉뚱한 시인, 술자리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고 슬그머니 사라져 ‘번개탄’이라 불리는 기자 친구 등 다양한 인물이 포함돼 있다. 귀신을 무서워하고 남 흉보기를 즐기며 청소하기 귀찮아 며칠씩 개지 않은 이불 위에서 만화 보고 소주 마시고 오징어 뜯으며 야구 중계 보는 공씨의 맨얼굴도 낱낱이 드러난다.

공씨의 작업은 출판계에서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2008),『즐거운 나의 집』(2007),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 등 그가 내는 책들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깃털처럼 가볍게 뛰어오르곤 했다. 그런 반응은 이른바 운동권 후일담, 페미니즘, 제도로서의 사형의 정당성 등 휘발성 큰 이슈들을 치열하게 껴안은 아픔과 깨달음의 흔적이 생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는 위기 상황일수록 여유가 필요하다고 가벼운 어조로 말을 건넨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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