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모건의 은행가 리더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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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02면

나는 JP 모건이라는 미국의 19세기 은행가를 존경한다. 그는 거대 상업은행인 제이피모건체이스와 거대 투자은행인 모건트러스트를 사실상 창업했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조그만 은행을 미국 최대 규모로 키운 능력도 놀랍지만 그를 존경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다. 평상시에는 ‘탐욕의 화신’이었지만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치면 만사 제치고 해결사로 나섰기 때문이다. 1907년 위기 때는 자신의 재산까지 내놓았다. 막대한 구제금융을 조성해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기관들을 지원하고, 증권거래소와 뉴욕시 정부를 파산 직전 상황에서 건져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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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려운 시기에 뜬금없이 ‘존경’ 운운하는 건 위기감이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듯해서다. 그동안의 위기감은 위기가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자신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불안감이었다. 그러나 지금 싹트는 위기감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다시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체념에 가까운 느낌이다. 체념과 절망만큼 두려운 건 없기에 온 사회가 전력을 기울여 막아야 하고, 그러려면 더 늦기 전에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사실 이는 정치가 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내심 ‘심기일전의 정치’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3류 정치에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모건 얘기로 시작했기에 여기서는 은행장에게 바라는 것만 말할 참이다. 모건 같은 리더십을 기대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나와 내 은행만 살면 된다’는 보신주의와 자행(自行)이기주의만 당분간 버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만 해도 국민에게 큰 희망을 줄 것 같다. 은행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다들 안다. 특히 대형 은행은 평상시 영리법인이지만 비상시엔 사회적 공기(公器) 역할도 해야 한다. 그게 외환위기 이후 덩치가 커진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늘 주창해 오던 리딩 뱅크(선도은행)가 해야 할 일이다. 위기 때는 정부 정책과 보조를 맞추고 금융시장의 분위기를 잡아 줘야 한다. 자신은 다소 손실을 보더라도 경제 전체의 버팀목 역할을 해 준다면 위기의 충격도 한결 덜하거니와 극복도 빨라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은행과 은행장들은 이런 역할을 전혀 못 하고 있다. 겉으로는 리딩뱅크를 주창하지만 자기 밥그릇만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덩치는 커졌지만 역량은 그에 못 미쳐서다. 이번에도 은행은 파격적인 정부 지원을 받았다. 한국은행이 몇 달 새 시중에 푼 원화만 20조원이 넘고, 정부와 한은이 공급한 달러화도 50조원을 넘는다. 이 돈만이라도 제대로 돌렸다면 신용경색이 이처럼 극심하진 않았을 게다.
그러나 은행들은 낮은 이자로 받은 돈을 고리의 금융상품에 넣어 두거나 돈을 준 한은에 도로 맡기는 보신주의 행태로 일관했다. 그 사이 중소기업 대출은 절반 이하로 줄고 부도업체 수는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자본이 많아지면 은행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은행장들은 자본확충펀드와 공적자금을 통한 증자 방안에 ‘결사 반대’다. 정부가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심한 일이다. 공멸의 순간에도 내 경영권, 내 은행을 따질 셈인지 묻고 싶다.

이러니 정부가 팔을 비틀어 모든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 주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져도 은행 편을 들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은행의 외화 후순위채권 사태도 그렇다. 4억 달러라는 내 돈 챙기기에만 급급했지 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지지 않는 소탐대실이 아닐까 싶다.

거듭 말하지만 은행장은 이 나라의 경제계 지도자다. 정계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금, 은행장마저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국민이 기댈 곳은 별로 없다. 그게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운명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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