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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잇단 군부 인사 … 3대 세습 이미 진행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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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마을.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은 북한이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지난 19일 발언은 ‘포스트 김정일’ 논의에 불을 질렀다. 클린턴 장관은 20일 “이미 언론 보도에서 많이 접한 내용으로 비밀 정보를 얘기한 것은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미 국무장관이 ‘포스트 김정일’을 공개 거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북한이 ‘최고 존엄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반발할 수 있는 데다 미국이 북한 내부의 후계와 관련된 ‘조짐’을 감지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극도로 신중했다. 한 당국자는 “아직까지 북한 후계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도 상식 차원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이번 발언은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협상하지만 그 이후인 ‘포스트 김정일’ 시나리오에도 대비하고 있음을 공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클린턴 장관 발언이 북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선제적 압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후계보다는 비핵화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후계를 둘러싼 혼란이 비핵화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는 취지의 강력한 ‘비핵화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북한 후계와 관련해 주목받는 징후는 ‘만경대 가문’ ‘백두의 혈통’ 등 최근 잇따라 나오는 세습 정당화 표현과 과거 김 위원장의 권력 획득기에 그를 도왔던 최측근 인사들의 전진 배치다. 모두 김 위원장 친정 통치의 강화인 동시에 3대 세습을 염두에 둔 사전 기반 작업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한 데 이어 이날 지난 수년간 공개 석상에 거의 나오지 않았던 오극렬(78) 노동당 작전부장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오 부위원장은 건강이 안 좋은 군내 1인자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을 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나 오 부위원장 모두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 각각 당과 군에서 ‘김정일 정권’ 창출에 나선 1등 공신이다. 장 행정부장은 김 위원장의 권력 획득을 위한 근위대 역할을 했던 3대혁명소조를 김 위원장으로부터 물려받아 책임졌었다. 오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되기 이전부터 최측근이었다. 아버지의 권력 창출을 도운 두 거물이 다시 전면에 섰다는 점에서 아들의 권력 기반 만들기에도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북한학) 교수는 “누가 후계로 낙점되건 그를 보좌해 충성할 인물들을 자리에 앉히는 체제 재편 작업 가능성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는 이 같은 징후를 3남 김정운(26)의 후계 내정설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진 확인되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향후 후계 구도에선 유약한 것으로 알려진 둘째 김정철(28)보다는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김정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는 지적이 나온다. 장남 김정남(38)과 관련, 고유환 교수는 “경호원도 없이 외부로 떠돈다는 점에서 후계군에서 일단 멀어졌다고 보는 게 적절하지만 향후 북한 급변 사태와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북한 지도부가 대중국 카드로 김정남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연내 후계 구도가 드러날지, 누가 후계할지를 전망하기에 아직은 이른 것 같다”며 “다음 달 8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선거를 전후해 북한 엘리트의 재편 여부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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