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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가난의 대명사 슈베르트 알고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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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
니시하라 미노루 지음, 이언숙 옮김
열대림, 272쪽, 1만4800원

다음 중 검증된 사실은 무엇일까? ①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 ②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5번을 ‘운명’이란 부제를 붙였다. ③슈베르트는 가난했다.

이 책에 따르면 정답은 없다. ①살리에르는 ‘독살’이라는 모험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만끽하고 있었고, ②‘운명’은 베토벤의 이미지 메이킹을 담당했던 비서 안톤 쉰들러가 붙인 제목이다. ③슈베르트가 사망 7년 전부터 2년 동안 벌어들인 2000굴덴은 같은 시대 관료들의 평균 급료 4~5년치에 해당했다.

지은이는 서양음악사에서 ‘소문’을 걷어내는 역을 자청했다. 괴팍하고 고독한 악성(樂聖) 베토벤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실체를 밝혀내고, “기괴하다”며 난도질 당했던 바흐의 작품이 갑자기 주목받았던 역사적 배경이 전쟁으로 강력해진 민족주의였음을 설명한다. 슈베르트의 청빈함과 순수함 역시 막연한 소문. 그의 실제 수입을 철저히 분석해 “수입이 어디로 갔느냐”고 따져 묻는다. 포장 속에 숨겨진 방탕함을 슬쩍 찌른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음악을 배우는 일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음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천상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에게 여성 편력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단순한 험담 이상인 이유다. 출판업자에게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선배 작곡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는 모습에선 사람 냄새가 난다.

저자는 음악사회사를 전공하고 일본의 토호가쿠엔 대학에서 서양음악사를 강의하고 있다. 대다수의 음악 대학에서 교과서로 쓰고 있는 한 서양음악사 책과 비교해보면 이 책의 장점이 보인다. 물론 진지한 공부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 같은 학문적 접근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유쾌한 야사(野史)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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