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냉정 아쉬운 참사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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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항공 참사에서 기자는 사촌형 내외분을 잃었다.

사고소식을 접하고 기막힌 마음은 다른 유가족들과 매한가지였다.

혹시 기체고장은 아니었는지, 유해복구작업은 왜 그렇게 더딘지 의심스럽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다를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처리를 지켜보는 국내반응에 대해 해소할 길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전문조사단이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원인을 둘러싼 한.미 양측간 입장차이 노출' '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조짐' 등 국내언론에 비친 사회의 격앙된 분위기를 당연시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사고원인이 미국산 항공기의 결함이라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보잉사는 피해최소화를 위해 진력할 것이다.

이는 대한항공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사고에 따른 피해극소화 노력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고처리과정을 '음모설 (陰謀說)' 로 푸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측 구조원들이 시신 (屍身) 발굴에 소극적이었다든가 유가족들의 현장접근을 억제했다는 등 미흡한 대목은 당당히 지적할 일이다.

하지만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미국정부와 민간인들이 보인 노고에 대해 평가할 부분이 있으면 정중한 예의도 갖춰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2등 (二等) 국민이 아니지 않은가.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NTSB) 소속 전문가들이 한국측과 마주 앉아 자료분석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검토작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수개월이 걸릴 과정에서 어느 일방의 편파적 분석이나 특정기업의 입김이 사태의 결론을 압도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미정부는 사고직후 우리측이 요청하기 전에 의료전문항공기파견을 제의해 왔고 미 백악관의 아시아담당관은 태평양사령부에 적극지원을 지시하기도 했다.

모두 우리정부가 정신차려 대책을 강구하기전에 이뤄진 일들이다.

이번 사고를 보도하는 미 언론들은 한.미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유가족들의 분노하는 모습에 놀란듯 하다.

시신을 한시 바삐 찾겠다는 유가족들의 절절한 심정과 원인규명과 사고수습에 우선을 두는듯한 미측의 일처리가 대조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들이 더욱 인상적으로 받아들인 대목은 한국언론들의 감정섞인 보도자세다.

이제 형님 내외분을 포함한 희생자들을 보내며 어딘가를 향해 실컷 울분을 토하고 싶다.

그러나 울분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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