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북가좌동서 대장간 운영하는 김예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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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곡괭이.낫뿐입니까. 각종 절단기.특수 제작 망치등 주문만 하시면 뭐든지 만들어 드립니다."

요즈음 30도를 웃도는 삼복더위지만 신촌을 지나 수색로를 지나다 서대문구북가좌동 모래내 삼거리에 다다르면 시원함이 절로 느껴진다.

화성탐사가 말메뉴로 등장하는 시절이건만 아직까지도 섭씨 2천5백~3천도의 불구덩이를 벗삼아 쇳덩이를 두드려 각종 공구를 만들어내는 모래내대장간 대장장이 김예섭 (金禮燮.53) 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남광양이 고향인 김씨가 '망치인생' 을 시작한 것은 16살때인 60년 이웃마을 대장간에 놀러 갔던게 계기. 당시 주인이자 그후 김씨에게 사부가 된 정순곤 (75) 씨가 '소질있으니 배워보라' 고 권유한 것이 그만 그의 인생항로를 결정해 버렸다.

70년 상경, 신당동 대장간 골목에서 어깨너미 배움을 계속하던 김씨는 중동바람이 한창이던 78년 사우디에서 목돈을 벌어 80년 지금의 자리에 대장간을 차렸다.

"예전엔 기계가 없어 전부 해머로 두들겨 만들었지요. 하지만 지금도 기계로 찍어내는 것보다 대장장이의 손을 거친 것이 훨씬 품질이 좋습니다." 본격적인 망치질만 어언 30여년. 그동안 다져진 손질이 워낙 단단해 김씨를 찾는 고객이 다양한 것은 당연한 일. 그의 손을 거치면 도시가스.상하수도.전화케이블.지하철공사의 인부들이 찾는 갖가지 특수 제작 공구들이 대번에 척척 만들어진다.

소량 다품종의 주문생산인 셈이지만 워낙 제품의 질이 좋아 '모래내 김씨 아저씨' 하면 웬만한 공사장 인부들은 다 고개를 끄덕인다.

김씨가 만드는 제품은 줄잡아 1백여가지. 망치 종류만 50가지나 된다.

그러다보니 월 순수익이 3백만원을 넘는다.

하지만 김씨의 주특기는 따로 있다.

무당들이 쓰는 '만신용 삼지창' 이 바로 그것. 1년에 50여개씩 나가는데 부산서도 주문이 올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김씨는 오늘도 제자 두명과 함께 웬만한 사람은 들기조차 힘든 왕망치를 휘두르며 온갖 '작품' 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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