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 삼국지]5. 관심 끈 조성민·임선동의 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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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성민, 요미우리와 비밀계약!"

94년 10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도중에 터진 폭탄같은 소식이었다.

고려대 3년인 조성민이 1억5천만엔 (약 12억원) 의 계약금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의 대명사격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밀약을 했다는 것. 국내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조는 "아직 계약을 한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신중히 일본 진출을 생각해보겠다" 며 이 사실을 부정했다.

이때 조성민은 이미 요미우리 입단을 결정한 상태였다.

4학년 시즌을 마친 뒤 일본에 건너가기로 약속했으며, 국내구단의 지명을 피하기 위해 국내의 지명날짜보다 약간 앞서 요미우리와의 공식계약을 발표하기로 시나리오까지 완성해 놓은 뒤였다.

94년 겨울 박찬호가 귀국했다.

비록 마이너리그에서 1년을 보냈지만 박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내팬들의 우상으로 자리잡아갔다.

박은 모교 한양대에서 동료.후배들과 겨울훈련을 함께 하며 광고출연과 사인회등으로 인기를 높였다.

95년 조성민과 임선동이 졸업반이 되면서 이들의 진로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그해 9월 일본 구라시키에서 벌어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 매스컴의 모든 시선이 조성민에게 쏠렸다.

요미우리 입단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조성민의 일본진출이 가시화하면서 임선동도 꿈틀거렸다.

다이에 호크스가 임을 스카우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던 덫이 임선동의 발목을 잡았다.

92년 휘문고를 졸업하면서 임은 연고구단 LG로부터 1차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LG의 양해가 없이는 일본 프로구단과 입단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려서 야구 잘한게 죄인가.'

임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LG와 법정싸움을 시작했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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