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참사 희생자 여승무원 약혼자 허탈한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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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꿈에 세경씨가 나무에 기대어 아프다고 했어요. 분명 어딘가 살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이번 사고로 실종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허세경 (許世京.22) 양의 약혼자 全재현 (31) 씨는 퀭한 눈으로 탑승자가족 대책본부가 마련된 서울등촌동 대한항공 중앙교육연수원 로비에 주저앉아 있었다.

全씨는 許양과 지난해 가을 약혼식을 올리고 올 10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지난 봄 결혼날짜를 받았을 때 그대로 식을 올리는건데…. 일 욕심이 많았던 세경씨의 말에 따라 가을로 늦춘 것이 우리의 결혼식을 하늘로 날려보내게 될줄 몰랐습니다. "

이틀동안 대책본부 2층 로비와 3층 상황실을 오가며 행여나 괌으로부터 추가구조 소식이 들어올까 기웃거리던 全씨는 "더이상 생존자는 없다" 는 보도에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全씨는 許양이 동명전문대 영어과에 재학중이던 95년 봄 처음 만난 후 許양이 지난해 4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비행기를 타면서 불규칙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사랑을 키워왔다.

全씨는 許양의 어머니가 "장만해놓은 혼수품을 어떡하라고…. 이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겠느냐" 고 흐느끼자 끝내 참았던 눈물보를 터뜨렸다.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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