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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탓하기보다 적정 환율 재검토가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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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 경제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갖가지 위기 대책을 시행 중이다. 필자는 이들 대책 중 환율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정부와 경제계 등에선 고환율이 고물가를 부추겨 내수 위축과 저성장을 불러온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에서 원자재를 제외한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오히려 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고환율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국산 제품이 잘 팔리게 되어 국내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최근 달러당 환율이 90엔 이하까지 떨어지자 전 산업이 엔고 불황의 충격파에 휩싸여 있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인 도요타나 전자업계의 대표선수 소니 등은 급격한 수익 악화로 대량 해고를 하고 있다. 이들 대기업에 하청을 주는 중소기업들은 폐업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환율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말 중·미 전략경제대화에서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했지만, 중국은 아랑곳없이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제한 폭까지 올렸다. 오바마 정권도 집권하자마자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판하며 경고장을 날렸다. 자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는 기싸움이다.

우리 정부는 그간 환율을 내리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거 풀어 시장에 쏟아붓고 잇따라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현재의 환율이 과연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높은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130억 달러 적자였다. 반면 여행 및 유학 등 서비스수지는 환율 상승으로 적자 폭이 급감했다. 특히 엔고까지 겹쳐 일본 쇼핑객과 의료 관광객들의 방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으로 이전했던 한국 업체 공장들이 환율이 올라 타산이 맞지 않자 국내로 유턴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고환율이 내수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들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불황 극복에 도움이 되는 적정 환율이 어느 수준인지부터 심사숙고해야 한다.

채규대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