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경제 국수주의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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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경제가 기로에 섰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이 아니다. 그 위기를 극복한다며 등장한 각국의 경제 국수주의(Economic Nationalism)가 세계경제를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위기 극복의 수단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부르는 꼴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경제 국수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내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경제적 국수주의의 음습한 기운이 경제위기를 틈타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국수주의는 금융과 실물 양쪽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금융에서는 자국 금융회사 살리기에 급급한 금융 중상주의의 모습으로 되살아났고, 실물 쪽에선 자국 상품과 산업을 편파적으로 지원하는 보호무역주의의 외피를 둘렀다. 어느 것이나 국경의 담장을 높이고 외국인을 차별하는 구시대의 유물이기는 마찬가지다.

 국수주의는 위기의 진원지인 금융 쪽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여파로 세계의 거의 모든 금융기관이 타격을 받았다. 전 세계 금융권에 돈줄이 막히면서 금융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빨아들였다. 더러는 정부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아 국유화의 길을 걷기도 했다. 금융의 국수주의는 정부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국제적인 금융기관이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공적 자금이 들어가는 순간 확실한 국적이 찍힌다. 정부 돈으로 살아난 은행은 더 이상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각국 정부는 자금 지원을 받은 금융회사에 자국 기업에 돈을 대주라고 눈을 부라린다. 직접 돈을 대주지 않고 예금 보호나 보증을 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금융시장은 위기 직후부터 철저히 국가 단위로 움직여 왔다. 금융회사들은 해외 자산을 처분해서라도 돈을 국내로 끌어와야 했다. 세계적인 금융경색 속에 치열한 현금 쟁탈전이 벌어졌다. 국제금융시장은 금이나 은의 보유량을 국부의 척도로 삼았던 중상주의 시절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실물 쪽의 국수주의는 각국이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다투어 경기 부양책을 쓰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이 자국산 제품 구매(Buy American) 조항을 포함한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킨 게 대표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과도한 보호주의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끝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영국과 독일·프랑스·중국 등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동원한 나라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보호주의 대열에 섰다. 이들은 자유무역의 원칙에 위배되는 줄 알면서도 자국의 주요 산업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지키라는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의 경고도 아랑곳없다. 그러면서 “(보호주의는) 경제의 아편”이라거나 “세계 경제를 죽이는 독약”이라는 험한 표현까지 써 가면서 서로 상대방의 보호주의 정책을 비난한다. 이제 세계 경제는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를 가리기 어려운 자국 이기주의의 진흙탕이 돼 버렸다.

 경제적 국수주의의 귀결은 뻔하다. 경기 침체는 더 깊고 길어질 것이며, 금융시장의 정상화는 더 멀어질 것이다. 세계 경제가 국수주의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적어도 한 세대 이전으로 퇴보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 국수주의는 대표적인 ‘합성의 오류’다. 각자가 저만 살아보겠다고 택한 해법이 합쳐져 결국 전체를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로 이끌고 마는 것이다. 세계를 이 논리의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것이 진정한 국제 리더십이다. 19세기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미국이 그 역할을 해냈다. 지금 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역시 미국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해야 할 미국 스스로가 국수주의에 앞장서고 있으니 그저 딱할 뿐이다. 이제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이라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밖에 없지만 그 많은 나라의 정상들이 모여 과연 국수주의의 타파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