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서 자유학교 추진 12번째 개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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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충북영동군상촌면 대해분교. 3년전 폐교가 된 학교 마당이 모처럼 북적였다.

한켠에서는 5~6명의 아이들이 호미와 곡괭이를 들고 땅을 고르고 있었다.

두 마리 잿빛 토끼를 위한 집을 만드는 중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비슷한 수의 아이들이 교사 (校舍) 담벼락에 페인트로 알듯 모를듯한 벽화를 그리며 연신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또 한지 공예.보릿대 엮기.생약품 만들기 등을 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 (터장 옥영경.32.여)가 주관한 12번째 '계절 자유학교' . 2004년에 이곳 폐교에 자유학교라는 실험학교를 세울 것을 목표로 활동중인 '물꼬' 는 3년째 계절마다 캠프를 열어왔다.

'물꼬' 는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지도하는 사회운동가와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옥씨는 "자유학교의 목표는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교육" 이라고 말했다.

이번 캠프에는 수도권 지역의 초등학생 1백3명과 교사로는 '물꼬' 의 회원인 30명이 참가했다.

대부분 20대인 교사들은 이화여대생 6명을 포함해 예비교사부터 회사원까지 다양했다.

캠프 내용을 보면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수업' 과 공부인지 일인지 아니면 놀이인지 분간이 어려운 활동들로 가득했다.

오전 9시 아침식사를 마치면 전통문화 배우는 시간이 시작된다.

사물놀이.탈춤.판소리중 하나를 골라 배운다.

곧이어 10시부터는 공부시간이다.

2시간 동안 식물채집.한땀두땀 (바느질).동네 역사책 (지역사공부) 등 18개의 과목중 원하는 수업을 찾아간다.

생약품 만들기 수업시간에 명아주.쇠비름.바위취 등의 풀을 뜯어다가 절구에 찧는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수업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강제는 없다.

아무 수업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저 뛰어 놀아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30일 오전 공부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은 단 2명 뿐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조별 활동인 '모둠활동' 시간. 일과 놀이를 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등줄기에 땀이 베도록 운동장 풀뽑기.텃밭매기 등 일을 마친뒤 근처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는 길에 "땀흘려 일한 사람만이 즐겁게 놀 수가 있다" 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오후 10시쯤에는 '한데 모임' 시간을 가졌다.

김은진 (26.여) 교사는 "이 시간은 학생들 스스로 하루를 반성하고 새로운 규칙을 정하는 시간으로 자유학교에서 말하는 '자유' 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회의를 시작했다.

일부 일정 변경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두차례 표결했다.

선생님도 참여, 학생과 똑같은 한표를 행사했다.

폐교라 시설은 보잘것 없다.

샤워장은 1개, 화장실은 아래가 들여다 보이는 재래식. 장판을 깐 교실에서 40명 이상 모여 잔다.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다.

영동 =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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