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가 수카르노墓 이장문제로 소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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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동안 총선으로 시끄러웠던 인도네시아 정국이 이번에는 '이장 (移葬)' 문제로 소란스럽다.

'독립의 아버지' 로 추앙받는 고 (故) 수카르노 대통령의 묘지를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와 유족측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수카르노의 장녀인 야당 지도자 메가와티는 여동생 3명과 함께 지난달 20일 남부 자바섬내 브리탈에 마련된 선친의 묘소를 참배한 뒤 "보골에 묻어달라는 것이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고인의 유지를 존중하겠다" 고 말했다.

보골은 수카르노가 70년 6월21일 사망할 때까지 말년을 보냈던 자카르타 교외의 전원마을. 그러나 수하르토 정권은 '고인을 고향땅에 모셔야한다' 는 이유를 내세워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천㎞나 떨어진 브리탈에 수카르노를 매장해버렸다.

묘지이장은 메가와티의 계산된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 수하르토 정권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죽은 아버지의 혼을 불러내려는 속셈이라는 것. 물론 정부의 입장은 단연코 "안된다" 다.

유족과의 합의를 거쳐 국장 (國葬) 으로 현재의 묘소에 안장했는데 새삼 이장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도 바로 옆에 '수카르노 성지 (聖地)' 가 마련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수하르토 정권의 속마음인 듯하다.

가뜩이나 부정선거와 장기독재로 야당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판에 묘지이장으로 자칫 수카르노 열풍이 불어닥칠 경우 메가와티에게 날개를 달아줄 뿐이라는 판단인 셈이다.

그러나 "독립영웅을 오지 (奧地)에 모시는 것은 국민된 도리에도 어긋난다" 는 메가와티의 주장이 국민들 사이에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어 정부는 상당히 부담스런 표정이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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