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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문제있는 TV토론 공동주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협 (協) 이란 글자는 十 (열십) 곁에 力 (힘력) 자 셋을 합한 협 (합할 협) 자를 덧붙여 만든 것이다.

많은 (十) 사람이 힘을 합한다 (협) 는 뜻의 글자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하면 일이 훨씬 잘되는 것이 순리 (順理) 다.

그런데 그런 순리가 도리어 역리 (逆理) 로 변하는 현실 앞에선 세상일의 어려움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협 (協) 자 붙은 모임인 협회 (協會)가 하는 일은 마땅히 개별회사가 하는 경우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할터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지난주 방송협회 (放送協會) 와 신문협회 (新聞協會)가 공동으로 추진했던 대선후보 초청 TV토론회만 해도 그렇다.

그 결과는 그 이전에 개별신문사와 개별방송사의 협력으로 이뤄졌던 TV토론회보다 훨씬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토론의 진행이나 패널리스트의 문제에서부터 토론 내용에 이르기까지 자성 (自省) 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또 지면 (紙面)에 그것이 반영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두 협회가 들어서서 일을 꾸밀 때부터 이미 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같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속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른 체하고 다른 데서 개선책을 찾는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협회가 한 일은 외형상으론 공동으로 힘을 합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에 있어선 힘을 제약한 것이었음을 부인할 길은 없다.

그 귀결 (歸結) 이 시청자들의 호된 비판으로 나타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밖에 없다.

따라서 그 책임을 패널리스트나 진행자에게만 돌릴 일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협회가 하는 일이 경쟁제한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지양 (止揚) 돼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방송토론의 질적인 개선은 원초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점은 비단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문의 경쟁력과 질적인 개선을 제약하는 것은 어떤 경우든간에 용인돼선 안된다는 확고한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내가 구태여 이 점을 지적하는 까닭은 신문이나 방송이 경쟁이 치열해지면 질수록 그 경쟁을 질적인 개선으로 승화시키려 하지 않고 경쟁 회피적인 길로 자기 도피 (?

) 하려는 성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돼선 결국 구태의연 (舊態依然) 하다는 소리밖에 들을 것이 없게 된다.

언론은 흔히 '정치' 를 보고 '구태의연' 하다고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냉철히 말한다면 구태의연한 '정치' 와 구태의연한 '언론' 은 사실상의 표리 (表裏)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이 구태 (舊態) 속에서 머무르는한 정치의 구태는 벗겨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언론의 진지한 성찰 (省察) 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아울러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언론의 줄서기' 문제는 언론의 본연적인 자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특정 대선주자에 대해 일부 언론이 '줄서기' 를 하고 있다는 지적은 진정한 언론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모욕적' 인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언론이라면 애초부터 '줄서기' 라는 말을 들을 필요도, 들을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부당한 공정보도를 보고 아무도 감히 '줄서기' 라고 비난할 까닭이 없으며, 그런 비난을 하는 경우가 혹시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비난하는 사람의 정신상태를 의심받게 하는 조건을 충족시킬 뿐이다.

한데 일부 언론의 '줄서기' 문제는 오늘에 이르러 새삼스런 것은 아니라고도 일컬어진다.

그것은 지난번 대통령선거때도 나타났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가 일어나는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가지로 집약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첫째는 일부 언론기관이 겉으로는 공정보도를 표방하면서 속으로는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교묘히 위장된 지면으로 권력의 산파역을 자임하는 경우다.

둘째는 일부 신문기자가 기자 본연의 자세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특정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기사를 쓰는 경우다.

그 결과로 선거가 끝난 후 응분의 자리로 보상받는 따위가 서슴지 않고 벌어졌던게 지난날의 행태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오늘날의 언론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하나라고 강조해야 할 것같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신문도 떳떳하게 특정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힐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미국이나 유럽의 유력한 신문들처럼 정정당당하게 후보자의 지지 이유를 밝히고 논설로 뒷받침하는 것이 정도 (正道) 라는 인식이 있다면 마땅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에도 사실 보도에 있어서의 공정성은 반드시 확보돼야 하며, 그것은 지지 논설과 별개고 엄격히 구분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실보도는 기자가 이른바 '정치' 를 하기 시작하면 공정성에 흠집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것에 제동을 가하는 것은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의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신문기자라고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정치를 하려면 언론사를 떠나서 해야지 기사로 '정치' 를 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다짐해야 하겠다.

[이규행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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