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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유자 아홉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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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겨울은 겨울이다. “36년 만에 가장 따뜻한 2월 초순”(기상청)이라더니 며칠 새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기온이 오락가락하면 고뿔 들기 십상이다. 이런 때에 대비해 초겨울 어름, 유자청(柚子淸)을 만든 주부가 제법 될 게다. 잘 익은 유자를 껍질째 저며 꿀이나 설탕에 두어 달 잰다. 이를 물에 탄 것이 유자차다. 어린 시절 감기에 시달릴 때면,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뜨거운 차 호호 불어주던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유자의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유역이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건 신라 문성왕 때인 840년이다. 장보고가 당나라 상인으로부터 씨앗을 얻어 남해안 일대에 퍼뜨렸다. 그 덕을 크게 본 곳이 경남 남해다. 여기 유자는 향이 짙고 단맛이 강해 예부터 찾는 이가 많았다. 반면 생산량은 유달리 적어 타 지역 산(産)보다 값이 비쌌다. 남해 유자를 1970~80년대 ‘대학나무’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20년 된 나무 몇 그루면 맏아들 학비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지금은 재배지가 크게 늘어 이 또한 옛 얘기가 되고 말았다. 그렇더라도 남해에서 나고 자랐다면 유자에 얽힌 사연 한 자락 없을 리 없다. 시인 고두현(46)도 그렇다.

20년 전 어느 겨울밤 일이다.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에 지쳐 귀가한 셋방으로 소포 하나가 배달됐다. 노끈으로 동여맨 꾸러미엔 비뚤배뚤 힘줘 쓴 엉성한 글씨. 어머니였다. 겉포장을 뜯는 데만도 한참 걸렸다. 마분지 여러 겹을 걷어내니 다시 나타나는 해진 내의, 버선 한 짝, 오래된 장갑. 드디어 한지 더미 속 얼굴 내민 건, 혹 상할까 꿀단지인 양 보듬어 보낸 남해산 유자 아홉 개였다.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았지야, 봄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시인은 풀어헤친 꾸러미를 여몄다 풀다 그 밤 내내 잠 이루지 못했다 한다. 어머니 편지글은 그대로 대표작 『늦게 온 소포』의 한 구절이 됐다.

최근 두 달 새 도산·폐업한 자영업자가 42만 명에 이른다는 정부 통계가 나왔다. 실질 실업자 수도 400만 명에 육박한다. 생업 잃은 가장의 절박한 심정을 뉘 알까. 가까이 그런 이가 있다면 언 맘 녹일 유자차 한 잔 대접해도 좋을 것이다. 나락에서 사람을 구하는 건 때로 차 한 잔, 시 한 소절, 우동 한 그릇이니….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