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가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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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14면

아내와 처음 사귈 때 일이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몰랐다. 그저 얼굴만 보고 좋아한 것이다. 그 시절엔 그랬다. 이름도 모른 채 좋다고 수줍게 고백하고 나중에 어느 날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그냥 거기서 만났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서너 번째 만났을 때쯤 아내는 내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을 말하자 참지 못하고 아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모른다

“왜요?”
“아니에요.”
“제 이름이…?”
“네, 솔직히 좀 촌스럽네요.”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내 이름이 좀 촌스럽다는 것을. 솔직한 아내의 말에 붉어지는 내 뺨도 좀 촌스럽다는 것을. 좀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나는 아내의 이름은 얼마나 도시적인지 궁금했다. 좀 촌스럽게도.

“예지예요. 김예지.”
좀 도회적이다. 좀 서구적이다. 안 그래도 그 시절 내게는 이성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은 과소평가하는 못난 버릇이 있었는데 아내의 이름을 듣고 나니 아내는 내게 너무 과분한 여자로 보였다. 좀 촌스럽게도.

그렇게 도시적이고 서구적인 이름이 사실은 가명이고 아내의 본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열 번, 아니 스무 번은 넘게 만난 후였으며 이미 손도 잡고 입도 맞춘 뒤였다. 키스가 끝나자 아내가 고백했다.

“사실 내 본명은요….”
아내의 본명이 촌스럽거나 그렇진 않다. 다만 가명이 워낙 도회적이고 서구적이라서 거기에 비한다면 좀 빛이 바래는 정도랄까. 아무튼 아내의 본명을 듣자 나는 잔인하게 아내를 비웃었다. 아마 좀 촌스러운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한 번도 아니고 틈만 나면 아내를 놀렸다. 좀 촌스럽게도.

그 후 아내는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가명을 비웃지 말았어야 했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정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자기결정권 말이다. 조금 더 예쁘게 불리고 싶고,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을 사랑스러운 허영을 그때 나는 왜 비웃었을까.

나는 빼앗은 아내의 가명을 돌려주고 싶었다. 밥 먹다 말고 나는 아내를 부른다. “예지씨.”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자기를 부르는 줄도 모르고 밥만 먹는다. 이제 아내는 자신의 가명을 잊어버린 걸까.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그래서 이름을 서구적으로 바꿨던 그 시절의 깜찍한 허영을 아내는 잊은 것일까.

나는 한 번 더 아내의 가명을 부른다. “예지야.”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챈 아내가 곱게 눈을 흘긴다. 스무 살 아내가.
매번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이렇게 불러야겠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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