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 부실이 주는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부실 대기업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기업부실이 초래한 경제위기관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한보에서 기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기업이 무너지고 있으나 아직도 당해기업을 둘러싼 지원시비에만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우리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의 위기를 잘만 처리하면 한국경제가 반석위에 놓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기업부실이 생긴 이유와 의미를 차분하게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부실책임은 경영실패에 있다.

경영의 실패는 노사 모두의 책임으로 귀결돼야 한다.

노사 모두 기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하게 몸불리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실화된 해당기업은 외부지원을 기대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뼈를 깎지 않으면 안된다.

기아가 계열사를 5개로 줄여 자구노력을 하겠다는 것은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의미가 있다.

정체불명의 국민정서에 기대 정부에다 압력을 가해봐야 앞으로는 통할 수 없다.

기업 스스로가 경쟁력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기업에 돌리고 처리절차를 시장에 맡기기에는 시장을 지탱할 제도의 정비가 덜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소한의 정부역할이 여기서 찾아진다.

기업의 퇴출을 위한 제도적 정비, 즉 기업인수및 합병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매번 기업부실이 이슈가 될 때마다 어떻게 정부가 지원해야 되느냐를 놓고 고민하겠는가.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최근 전경련 (全經聯) 이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 (自家撞着) 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필요할 때는 시장원리를 외치다가 어려울 때는 지원을 요구하는 2중적인 모습을 버려야 시장경제의 창달에 도움이 된다.

우리 스스로가 위기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외국에서는 한국경제의 장래를 위해 요즘 사태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고통스러운 정리과정을 나름대로 시장경제의 원칙에 맞게 치러낼 경우 위기는 기회로 바뀐다고 보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