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인들이 망치는 가락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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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네덜란드의 3백년 넘는 전통을 가진 꽃도매시장에서 우리가 가장 부러워할 점은 이 긴 역사동안 단 한건도 담합등 경매부정사건이 없었다고 하는 점이다.

전란을 겪으며, 그리고 세계경제의 부침 (浮沈) 과 함께 여러 차례 존망 (存亡) 의 기로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경매규칙을 끝까지 투명하게 지켜온 이 바닥 상인들이 오늘날까지도 이 연약한 농산물의 시장을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조직으로 굳건히 서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서울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청과류취급 도매법인 가운데 농협을 제외한 5개 법인 전부가 중도매인들이 뇌물을 받고 경매절차를 악질적으로 회피.생략하는 행위에 가담함으로써 생산자 (농민) 와 소비자를 함께 우롱 (愚弄) 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농산물은 생산자끼리 극히 경쟁적인데다, 특히 청과류는 보관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중간상인이 담합하거나 공정한 경매절차를 훼손하면 그 값은 너무도 쉽사리 폭락한다.

생산자를 잡는 담합이 있는 시장이라면 소매상이나 소비자에게 파는 값도 쉽사리 담합된다.

그래서 생산자는 헐값에 팔게 되고 소비자는 비싼 값에 사먹게 된다.

이 차액을 부당하게 챙기는 것은 이 시장의 공인된 붙박이 상인인 도매상들이다.

94년 농안법 (農安法) 파동 후에도 우리는 해마다 농민이 서울로 싣고 온 청과물트럭이 며칠째 경매에 부치지도 못한채 기다리고 있는 가락시장의 광경을 TV화면을 통해 봐왔다.

이런 음모적 현상을 가로질러 중도매상인들은 농민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가 생산자로부터 현지에서 밭떼기로 채소를 사오고 있는 것이다.

경쟁훼손을 통한 모리 (謀利) 는 길게 보아 결코 상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결국은 제 발등을 도끼로 찍는 짓이다.

상인은 어디까지나 경쟁을 먹고 살아야 한다.

감독기관은 어떤 경우, 어떤 형태로든 담합하는 상인, 경쟁을 훼손하는 상인은 시장에서 몰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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