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블레어총리,최대 시련 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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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다음달 8일로 집권 1백일을 맞는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집권 후 최대 시련에 직면했다.

국정에 특별한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다.

집권 노동당의 집안문제 때문이다.

노동당의 주인을 자처해온 노조가 그의 당 운영방식과 정책노선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최근 노조를 자극한 것은 노동당 내부에서 나돌고 있는 한 보고서다.

노조와 함께 노동당의 '두 날개' 를 형성하고 있는 페이비언협회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노동당이 노동자정당에서 의회정당으로 탈바꿈할 것을 역설하고 노조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노조가 제공하는 당비 (黨費) 지원도 거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노조는 노동당 예산의 절반이상을 부담하며, 전당대회 의결에서 전체 투표권의 3분의1을 행사하는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문제는 노조가 페이비언협회의 이같은 움직임의 배후로 블레어 당수를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노조는 지난 94년 7월 블레어가 당수로 취임한 이후 당내에서 계속 피해의식을 키워왔다.

블레어 당수는 취임 이래 노동당 현대화를 표방하고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탈바꿈을 선언했다.

그중 가장 극적인 것은 95년 4월 당 정강 (政綱)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 (제4조) 를 폐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조는 제대로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노동당이 우선 집권에 성공해야 노조도 잘 될 수 있다는 절대 명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가 집권 후 조각 (組閣) 과정에서 노조의 의견을 완전 무시했을뿐 아니라 노조와 가까운 당내 좌파마저도 내각에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함으로써 불만은 증폭됐다.

더구나 최근 블레어가 중도우파 자민당과 연대를 추진하자 불만은 폭발직전까지 치달았고 여기에 이번 보고서가 뇌관 역할을 한 것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최근 비밀회동을 갖는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조 원로들은 블레어가 노동당 간판을 내리고 미국 민주당식 정당을 꾀하고 있다고까지 비난하고 있다.

현재 노조와 당내 좌파진영은 오는 10월 전당대회에서 블레어의 노선에 정면 대항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올가을 노동당 전당대회는 블레어리즘의 성공 여부를 가름할 중대 기로가 될 전망이다.

런던 = 정우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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