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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고수가 고른 딱 한 장의 음반…무소르그스키‘전람회의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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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자신의 음반 콜렉션 앞에 선 용호성씨. 대학 시절 장학금을 주식에 투자해 불린 후 오디오와 음반으로 모두 바꿨던 적도 있다. [김태성 기자]


이 중 첫 음반은 뭘까. 용씨는 1985년을 떠올렸다. 그는 대학 1학년이었다. “우연히 학교 음악감상실에 들어갔어요. 피아노 곡이 들렸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어요. 작은 움직임도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30분 남짓 연주가 끝났을 때 그는 처음 그대로 서 있었다. 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 옷을 적셨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말이에요.”

◆5000장 음반 수집의 출발=그 음악은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1839~81)의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묘사한 16개의 모음곡이다. 음악을 녹음한 피아니스트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89). 고등학생 시절 ‘전람회의 그림’ 선율이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음악인 줄 알았던 용씨의 삶이 바뀐 순간이었다. “이전까지 들어온 ‘전람회의 그림’에 대한 느낌이 일거에 뒤집어졌어요. 음악 순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용호성씨는 이 곡을 녹음한 앨범을 집중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여러 작곡가에 의해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편곡된, 가장 보편적인 앨범부터 기타·금관악기로 연주한 앨범, 오르간 버전 등 희귀한 음반까지 모두 찾아냈다. 현재 그의 CD 선반에는 이 작품을 녹음한 앨범만 100여 장이 넘는다.

◆집중과 도약을 오가며 넓힌 레퍼토리=그의 클래식 음악 듣기는 범위를 넓혀갔다. 풍부한 선율의 러시아 작곡가로 향했던 관심은 엉뚱하게도 난해한 20세기의 음악으로 넘어갔다. 슈토크하우젠(1928~2007)이었다. “거의 소음이었죠. 쇠창살을 쇠로 긁는 소리였죠 ”

이어서 나긋나긋한 바로크의 바흐(1685~1750)에 귀가 트였다. 바흐와 슈토크하우젠으로 양극에 동떨어졌던 관심이 점차 가운데로 모이면서 음반이 그의 집을 채워갔다. “한 음악이나 장르를 집중해 파다가 그 다음에 훌쩍 다른 음악으로 관심을 옮겨가며 감상 레퍼토리를 넓혀왔어요.” 그래서 그의 컬렉션은 작곡가·시대·악기가 고른 비율로 맞춰져 있다.

◆음악이 바꾼 삶=지난해 6월까지 1년6개월 뉴욕 파견 근무를 떠날 때 최대 고민 또한 음반이었다. “이삿짐 부담으로 음반은 두 상자만 싸들고 떠났어요.” 재즈 음악은 300GB 하드 디스크에 따로 넣어 들고 갔다. 돌아올 때는 LP 500장이 늘어 있었다. 용씨는 뉴욕에서 보낸 18개월 동안 230여 차례 공연을 봤고, 지금도 연초에 200만~300만원어치 공연을 예매한다. 주말이면 책상에 앉아 10시간 넘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이 독특한 삶을 되짚어 보면 24년 전 우연히 들었던 음반 한 장이 자리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RCA

호로비츠의 연주에는 그간 모은 음반과 참석한 수십 차례의 실연 중에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색채가 묻어 있다. 거의 편곡에 가까운 수준으로 꾸밈음을 덧붙여 연주했다. 이 피아노 작품을 관현악으로 편곡했던 라벨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이 해석이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마지막 곡 ‘키예프의 큰문’은 호로비츠가 라벨 관현악의 아쉬움을 회복한다. 본래 작품의 장대함과 화려한 빛이 발휘된다. 엄청난 열정과 가공할 만한 집중력을 이만큼 보여주는 연주는 흔치 않다.

■ 용호성의 ‘음반 고수’ 따라잡기

- 쉬운 음악으로 시작하라 : 베토벤 교향곡 7번,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등 선율이 친숙한 음악 30~50장으로 첫걸음을 뗀다.

- 취향을 발견하라 : 유난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나 장르를 골라 레퍼토리를 넓혀간다.

- 공연장에 가라 : 좋아하는 작품의 연주를 직접 듣는다.

- 악보를 구해 보라 : 악보를 보며 곡의 구조를 이해하다보면 음악 듣기가 업그레이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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