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수로 분담금 떠넘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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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북 (對北) 경수로지원사업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부터 우려되던 가설 (假說) 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정부가 북한에 제공하기로 돼 있는 중유 구입비용의 분담을 우리정부에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60억달러를 웃돌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우리가 부담하기로 양해는 돼 있지만 결국 우리는 경수로협상을 주도한 미국이 생색내는데 기여하는 봉노릇만 하고 말 것이란 걱정은 처음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경수로가 공급될 때까지 북한에 해마다 50만의 발전용 중유공급을 전담키로 했던 미국이 착공을 눈앞에 둔 막판에 이르러 중유비용까지 분담하자고 나서는 것을 보게 되니 경제적 이해앞에 동맹국간의 의리나 국제적 신의가 뒤로 밀린다는 실망감을 갖게 된다.

북한에 경수로를 공급하게 된 것은 북한의 핵 투명성을 분명히 하고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막자는데 기본목적이 있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다는 데서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과 중국이 포함된 동북아시아지역의 안정을 꾀하고 핵무기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미국의 세계전략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미국으로서도 자기네 국익을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그런 것을 의회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다는 국내적 이유로 한국과 일본에 떠넘기려 한다는 것은 한푼 안들이고 이익만 챙기려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더욱이 미국의 이러한 요청이 시기적으로 한.미.일 3국간의 본격적인 경수로사업 분담금협상을 앞두고 나왔다는데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미국이 동맹국에 비용분담을 요청한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사정은 유례가 드문 7년째 연속 호황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정부의 골칫거리이던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도 내년이면 완전 해소되리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유비용까지 우리에게 떠넘기려 한다면 미국은 신의없는 동맹국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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