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이긴 이인제 후보 …세대교체 모험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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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한국당 경선에서 돌풍을 몰고온 이인제 (李仁濟) 후보는 결국 좌절했다.

그는 조직표의 높고 두터운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경선정국에서 졌지만 길게 보면 이긴 게임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李후보는 단기필마 (單騎匹馬) 의 출마선언 이후 불과 4개월도 안되는 사이 경선의 핵 (核) 으로 부상했다.

21일의 전당대회에선 기라성같던 정치선배들을 줄줄이 제치고 결선까지 올라갔다.

물론 1차투표에서 선두 이회창 (李會昌) 후보와 큰 차이가 났고 3위의 이한동 (李漢東) 후보에겐 불과 8표 이겼을 뿐이다.

그러나 결선에선 무려 4천6백22표를 얻어 유효투표의 40%를 얻었다.

. 그러나 그는 경선이 시작된 이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변변히 받지 못한채 홀로 뛰어다녔다.

그에게는 줄을 선 지구당 위원장들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그의 결선 진출은 오직 자력 (自力) 으로 수많은 난제 (難題) 들을 극복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그는 출마선언 자체도 모험이었다.

한보 부도 사태로 정치권이 쑥대밭이 돼 있던 지난 3월24일 "역사와 국민들로부터 심판받겠다" 며 뛰어들었다.

그와 가깝던 사람들조차 "정치권에 대한 국민감정이 안좋은데 출마선언은 자폭행위" 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길을 갔다.

그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세대교체를 통해 낡고 병든 정치의 틀을 벗어던질 때에만 당도 살고, 나라도 산다" 는 호소였다.

그의 외침은 3金정치로 대변되는 기존 정치판에 물리고 식상한 유권자와 대의원들을 파고들었다.

李후보의 진가는 TV토론회를 통해서도 거듭 확인됐다.

49세의 젊은 정치인 이인제는 자신이 국정운영을 떠맡을 능력과 준비가 충분함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바로 국민지지율로 나타났다.

지난 3월 경선참여 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2~3%에 불과했던 그의 국민지지율이 중앙일보 - MBC의 토론회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5%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후 계속 큰 폭으로 뛰어 세인을 놀라게 했다.

최근의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李후보는 경선에서 승리한 이회창후보를 비롯, 경쟁자들을 제치고 국민회의 김대중 (金大中) 후보와 지지도를 다툴 만큼 성장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대중의 지지를 완고한 여당 대의원의 표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만이 남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번 경선을 통해 광범위한 국민지지를 획득한 대중 정치인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세대교체의 기수로 등장했고 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상징화하는데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맨손으로 출발한 그의 도박은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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