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증거 내놓거나 책임을 져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신한국당의 박찬종 (朴燦鍾) 경선후보의 처신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가 상대후보의 이름과 액수를 구체적으로 밝히며 금품수수설을 폭로했을 때 이런 불미스런 사건의 진상이 조속히 규명되기를 바랐다.

그는 구체적인 증거까지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폭로 이후 그의 행태를 보면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검찰에는 고발 하지 않겠다고 상반된 얘기를 하더니, 당은 믿을 수 없으니 청와대에 직접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말해 놓고 실제로는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에 제출한 서류라는 것이 고작 "금품이 전달됐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들었다" 는 서신이라니 이 정도를 갖고 나라를 그렇게 흔들어 놓았는가.

우리는 선거에서 돈 문제라면, 특히 그것이 표의 매수와 관련된 것이라면 반드시 전당대회전에 진상을 밝히고, 책임 지울 것은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 朴후보는 폭로한지 닷새가 지났는데도 증거는 제시치 않고 이리저리 피해만 가니 눈앞에 닥친 전당대회를 망치자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당의 대통령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으로서, 또 지금까지 그를 지지해준 대의원이나 국민들을 보아서도 과연 그런 식의 무책임한 행동을 해도 되는가.

朴씨는 지금이라도 증거를 제시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신한국당도 이번 일을 흐지부지 넘기려하지 말고 분명한 매듭을 짓고 전당대회를 치르기 바란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제대로 처리가 안됐기 때문에 정치판의 분위기가 계속 혼탁했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쌓였던 것이다.

우리는 朴씨의 폭로에 부화뇌동해 전당대회연기론을 들고 나오는 일부 후보진영의 반응도 마땅치 않다.

사실 확인도 안되는 말을 믿고 시간만 끌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정해진 절차와 규칙을 소중히 여기고 이 틀안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벌이겠다는 민주주의적인 자세가 모든 후보진영에 요구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