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반성없는 공영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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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복 문화부 기자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탄핵 방송은 공정성을 잃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편향성'을 강도 높게 지적한 한국언론학회 보고서 내용이 보도된 11일 방송사 노조 등의 성명이 잇따랐다. 주로 연구의 부당성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반성과 자성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KBS 노조는 "흥미롭다. 그 많은 절차와 방법을 거쳤다는 연구가 탄핵주도 세력의 주장과 그렇게 유사할 수 있는지. 결론을 내려놓고 요식행위로 진행했다는 의심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MBC 노조도 "편파의 근거를 단 하나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강택 PD협회장은 "이번 보고서는 방송위 내 일부 보수세력들의 '주문생산'"이라며 "공정성을 의심받아야 하는 건 연구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분석에 참여한 교수들은 "학문적 토론의 장이 아니면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두달간의 학문적 성과가 소모적인 정치적 시비로 번지는 걸 원치 않는 듯했다. 그러나 박명진 언론학회장은 "이번 연구는 30명이 넘는 사람이 엄격한 방법론을 써 진행한 것"이라며 "누가 연구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관련 연구에 가장 권위 있는 학자들로 팀을 짰다고 설명했다. 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학원생들조차 분석 과정에서 놀랐다고 한다"며 "결론을 내려놓고 시작했다는 주장은 학문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의 공정성을 둘러싼 지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방송위는 최근 탄핵찬성 집회의 발언을 편파 편집한 MBC 시사프로그램에 주의 조치를 내렸고, '권고'도 여러 번 했다. 그럴 때마다 방송사 노조 등의 반응은 비슷했다. 일부 보수신문에 코드를 맞춘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언론학회라는 가장 권위 있는 학회의 학문적 분석에조차 발끈하고 나섰다.

방송사 중에서도 특히 KBS와 MBC는 명색이 공영방송이다. '오만과 편견'은 '공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복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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