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뉴스 포털인 로이드리스트는 최근 독일의 대표적 선주 클라우스 페터 오펜이 ‘해운 경기 악화로 한국의 한 대형 조선사에 발주한 1만4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실을 수 있는 용량)급 컨테이너선 네 척의 인도 시기를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공개되지는 않고 있지만 대부분의 선주가 조선소에 배 인도 연기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조선사들이 아직도 새로운 배 주문을 많이 받는 ‘기적’을 바라고 있지만 선주들이 배를 살 돈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MSC와 프랑스 CMA-CGM 등도 자금난으로 최근 한국의 대형 조선업체에 선박 인도 시기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조선업체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그런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그러나 실무 차원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박 인도 연기 요청을 조선업체들이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선주들은 보통 선박대금의 20%를 자기 돈으로 내고 나머지는 금융권에서 조달하는데 세계적 금융위기로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며 “선수금을 떼고 계약을 취소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인도 시기 연기 요청은 할 수 있어 조선업체들이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선주들이 살아야 조선업체가 살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며 “다만 이를 공개적으로 해주기는 어렵고 비밀리에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투자증권 송재학 연구위원은 “선주들은 조선 가격 급락과 해운시황 침체로 발주 취소를 고려하고 있어 2분기 이후에는 이 같은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를 하지 않아 그렇지 현재도 중소형업체를 중심으로 발주 취소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해운 시장조사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선박 가격을 나타내는 선가지수는 지난해 9월 190으로 고점을 찍은 뒤 10월 186, 11월 179, 12월 177 그리고 올해 1월 말에는 167로 떨어졌다.
특히 조선업체들은 신규 선박 수주 실적도 저조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3사는 업체별로 227~490척, 금액으로는 430억 ~570억 달러어치씩 선박을 수주해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해 놓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10월 이후에는 대형 3사의 수주 실적이 업체별로 1~5척에 불과하다. 굿모닝신한증권 조인갑 연구위원은 “빅3는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다 일감도 아직 충분해 최근의 수주 부진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나 이 같은 상황이 2분기까지 이어질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