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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교과서 문제는 일본 정부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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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도쿄 이다바시에 있는 다와라 사무국장의 사무실은 전국 각지에서 열릴 `새역모` 교과서 채택 반대 집회 일정을 붙여 놓은 종이들로 가득하다.도쿄=김현기 특파원

일본 우익들의 일제 침략 역사 미화.왜곡 교과서에 맞서 평생 싸워온 일본인이 있다.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네트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64)사무국장이다. 그는 2001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 교과서 파동'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의 반대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전체 중학교에서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0.039%)이 매우 낮았던 데는 그의 공이 가장 컸다. 그가 4년 만에 다시 새역모와의 일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4일 도쿄(東京)의 '네트 21'사무실에서 한 시간가량 만났다.

-우호적이던 한.일 관계가 최근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초긴장 상태다. 뭐가 문제인가.

"일본 정부의 책임이다. 일 정부는 아시아 인근 국가들과 협력할 뜻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과거사 문제는 일본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일본이 그럴 뜻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 일본 언론도 문제다. 3.1절 때 노 대통령이 발언한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한국 내에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데.

"교과서 문제로 이야기하자. 2001년 교과서 파동 때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인=새역모'로 간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활발했던 '새역모 불채택 운동'을 통해 대다수 일본인은 양심적이고, 불의에 맞선다는 사실을 많은 한국인이 알게 됐으리라 믿는다."

-요즘 새역모의 기세는.

"전국 중학교의 10%가 채택하게 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책동을 하고 있다. 자민당 정치인들을 등에 업고 있다. 문부성도 이에 동조한다. 2001년에는 새역모를 지지하는 지사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도지사.가토 모리유키(加戶守行) 에히메현 지사 정도였다. 지금은 가나가와(神奈川)현과 사이타마(埼玉)현의 지사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내각도 온통 새역모 지지자들이다. 상황이 간단치 않다. 그러나 새역모는 위기다. 회원 수가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2005년에 채택률 10%를 달성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발언이 나온 것도 그런 위기감을 반영했다."

-올해 새역모 교과서 채택을 막으면 새역모는 소멸하는가.

"그렇다. 1997년 1월 발족한 새역모는 지난해 9월까지 1만7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중 1만 명이 탈퇴했다. 새역모에 동의하지 않는 회원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채택률 0%가 되면 남은 회원 대다수도 탈퇴할 것이다. 새역모 교과서를 발간하는 출판사 후소샤(扶桑社)도 손을 뗄 것이다. 새역모의 역사 왜곡 운동을 끝낼 수 있다. 새역모 대체 조직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납치 문제 등으로 많은 일본 국민이 우익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은 세력은 소수파다. 그러나 새역모에 동조하는 세력 역시 소수파다. 압도적 다수는 중도세력이다. 지금 중도세력들이 납치 문제 등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신념에 의해 우경화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새역모의 역사 왜곡 실상을 논리적으로 알리고 호소하면 새역모 교과서에 반대할 세력들이다. 올해는 '새역모 교과서 0%'를 이끌어낼 자신이 있다."

-새역모는 왜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다. 일 정치권과 재계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군사력은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쟁을 가능케 하는 법률도 90년대 후반부터 차곡차곡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국민에게 '일본은 미군과 함께 어디서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새역모의 본심이다."

-채택이 결정되는 8월 말까지 자민당과 시민단체 간의 조직력 싸움이 되는 건가.

"그렇다. 자민당은 2001년 새역모 교과서를 지지하긴 했지만 당내 '교과서 의원연맹' 차원이었다. 본격적으로 달려들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자민당은 아베 신조(安倍晉三)간사장대리를 중심으로 전국 47개 지역에 지방의원연맹을 발족하는 등 조직을 전면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다. 뜻을 같이하는 여러 시민단체로 전국 지역조직을 형성했다. 얼마 전에는 전국 지역들을 10개 블록으로 묶어 서로 지원하는 '블록 학습교류회'도 구성했다."

-언제까지 4년마다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는가.

"먼저 일 정부가 각성해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물갈이돼야 한다. 또 일본 사회가 바뀌기를 기다려야 한다.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이 아직 일본 사회에 많다. 실제 난징(南京)대학살이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것은 84년부터다. 시간이 걸리지만 일본 국민에게 역사를 제대로 알려가는 것이 확실한 문제 해결 방법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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