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업 금지령' 노사 해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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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마케팅업에 종사하는 김영미(32)씨는 벌써 몇 달째 야근 중이다. 초비상 경제 위기로 연초부터 회사 분위기가 흉흉한 데다 ‘소비자의 지갑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동료들과 고심하다 보니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나마 야근 수당을 받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몇 푼 안 되는 수당마저 끊겼다. 1월 19일 월요일 아침 출근해 메일함을 열어보니 사장으로부터 편지가 와 있었다.

“친애하는 임직원 여러분, 전대미문의 경기 침체로 고생하고 있는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근무 외 시간에 일하는 비용은 별도로 처리하지 못하오니….”A4 용지 한 장을 가득 메운 편지 내용의 요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더 열심히 일해라. 단 수당은 없다.’

회사 곳간 사정이 어려워질 것은 예상했지만 야근ㆍ휴일 근무 수당까지 없애다니…. 김씨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그렇다고 야근이나 주말에 해오던 일들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씨의 머리 속엔 천사와 악마가 잔업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돈도 안 준다는데 목숨 걸고 일할 필요가 뭐 있어. 그냥 대충 일해’ ‘다른 회사들도 다 긴축하잖아.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직장인이라면 김씨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기업 경영진도 모른 체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 4인에게 그 해법을 물었다.

◇직장인이라면

1. 당면한 위기를 인식하라

현재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왜 우리만 수당을 안주나’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당면한 위기를 인식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회사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노사 상생의 문화는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이 고통을 분담해야 제대로 이뤄진다. 잔업을 피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서 해야 한다. 지금은 생존 경쟁의 시대다.

2.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지난 1월 미국의 ‘피의 월요일’을 생각해보라. ‘너 죽고 나 죽고’ 식의 노사관계는 지양해야 한다. 옛날에는 수레나 자동차 바퀴를 지면과의 충격에 강한 쇠로 만들었지만 쇠는 마찰만 클 뿐 충격을 흡수하지는 못했다. 고무가 더 효과적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입장을 바꿔 당신이 경영진이라고 생각해보라. 어느 직원을 먼저 해고하겠는가.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뛰어난 업무능력만 내세우며 회사에 불평하는 직원이 1순위일 것이다. 로또도 구매한 사람이 당첨된다. 수당이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높은 자리는 꿈도 못 꿀 것이다.

3. 근무 시간의 업무 집중도를 높여라

이번 기회에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근무 체질을 강화하라. 퇴근 시간 전까지 집중도를 높여 업무를 후다닥 처리해야 한다. 근무 시간에 쓸데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아야 한다. 업무의 효율성을 해치는 요인은 없는지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4. 군소리 없이, 그러나 티 내면서 일하라

회사가 문닫을 처지에 놓였는데 불평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불평분자로 찍히는 순간 당신의 해고지수도 높아진다. 불가피하게 잔업을 해야 한다면 군소리 없이 일하는 게 좋다. 일부에선 ‘일자리 나누기’도 한다는데 잔업 정도야 가뿐히 할 수 있지 않은가. 업무가 내게 너무 몰렸다고 판단되면 상사에게 알려 업무의 과중함을 이해시켜 동료들과 업무를 나눠야 한다. 그래도 업무량이 많아 야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왜 하는지’ 티를 내면서 일해야 한다, 자신의 객관적인 성과를 알려라.

◇경영진이라면

1. 구사채권 발행을 검토하라

잔업 수당을 주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잔업금지령을 내린 경영진은 사내 분위기를 잘 살펴야 한다. 애교 넘치는 장치들을 마련하면 직원들의 인내심을 얼마간 연장시킬 수 있다. 잔업이 불가피한 부서에는 사장 특별 보너스를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보너스 대신 약간의 선물도 나쁘지 않다. 잔업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해 회사 사정이 좋아진 다음에 보상을 해주면 어떨까. ‘구사채권’(求社債券)을 발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2. 복리후생으로 달래라

사기진작을 위한 방법은 많지만 인센티브만한 것은 없다. 때마다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줄 수 없다면 급여형태의 인센티브나 복리후생, 교육기회 부여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승진을 시키거나 권한을 강화해 주는 등의 보상도 고려할 수 있다. 물론 공평하고 투명한 성과관리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모든 직원이 수긍할 수 있어야 효과도 극대화된다.

3. 내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라

직원 없는 회사를 상상할 수 있을까. 회사는 직원이 살린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회사의 생명력은 직원의 애사심과 주인 의식에 달려있다. 경영진은 어려운 회사 사정을 사원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남들도 다 어려우니 우리도 수당을 없애야 한다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참으면 화려한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직원에게 가장 큰 동기 부여는 어려움을 극복한 후의 회사 모습이다.

호황 때 얻어지는 성과를 직원과 나누겠다는 약속을 하고 반드시 지켜라.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이 고통분담을 했다면 사정이 나아진 후 조그만 이익도 함께 쪼개 나눠가져야 한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R&R(Risk & Return)’을 확실히 인식시켜라. 위험이 따른 노력엔 반드시 전리품을 챙겨줘야 한다. 잔업에 대한 보상도 확실히 주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쳤을 때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돼야 미래에도 발전이 있다.

*도움말 주신 분=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 『회사생활 잘하는 기술 50』의 저자 최광돈씨, iGM정치경영컨설팅 이종훈 대표,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

글=이지은 기자, 삽화=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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