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의장 “선원들에게 선상투표 보장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300여만 명에 달하는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정치개혁특위에서 여야 합의로 마련한 법 개정안에 외항 선원들의 선상투표를 제외한 점을 문제 삼았다. 정치개혁특위에서는 선상투표 대신 해외 항구에 정박해 재외공관의 투표소를 이용하는 ‘선원 부재자투표’를 도입하기로 했었다.

김 의장은 2일 보도자료를 내고 “선원들은 세금을 내는 내국인인데도 방법상의 문제로 지난 60년간 국민의 가장 기본적 권한인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선상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선상투표는 국회의장이 되기 전부터 가져온 10년 소신”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법 개정안 논의가 한창일 때 해외 순방 중이어서 개정안 작업을 챙기지 못한 김 의장은 귀국 직후 일요일인 1일에도 의장실에 출근해 여야 원내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등 설득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김 의장은 지난 17대 국회 때 선원을 포함한 재외국민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직접 낸 일이 있다. 2007년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 의장 측은 현재 일본에서 실시하는 것처럼 선원들이 직접 팩스로 기표된 용지를 보내면 선거관리위원회가 받을 때 자동적으로 밀봉돼 나오는 방식을 제안했다. 선장에게 선거 관리 책임을 맡기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국회의장실에선 대상이 되는 선원 수가 1만6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치 못한 브레이크에 각 당은 당황했다. 국회 법사위는 일단 여야 원내대표단이 선상투표에 대해 다시 합의해 오면 이를 토대로 심의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팩스를 이용한 선상투표 도입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은 “이미 여야가 합의한 만큼 그대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2월 국회 개회=국회는 이날 본회의 개회식을 열고 30일간의 임시국회 일정을 시작했다. 김 의장은 개회사에서 “2월 국회는 경제위기 극복 의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야가 첨예한 입장 차를 보이는 쟁점 법안이라도 상임위에서 충분히 심사하다 보면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결론이 나면 승복하는 분위기도 여기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선승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