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아쉬움의 남긴 97갈라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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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꽃으로 장식된 무대에선 눈이 부실 정도로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세계무대에서 활약중인 유대계.중국계.한국계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평화와 화합을 위한 97갈라콘서트'.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올해 클래식 공연사상 최대의 이벤트를 보기 위해 진입로를 점령한 TV카메라를 비집고 들어가는 불편함도 참아냈다.

이날 전악장이 연주된 유일한 작품은 브람스의'2중협주곡'.악장 사이의 박수는 자제하는 게 옳지만 감동이 크면 어쩔 수 없는 법.그러나 청중들이 박수를 친 것은 협연자 장영주(바이올린).요요마(첼로)가 퇴장했기 때문이다.이곡에서 2악장과 3악장은 중단없이 계속 연주하도록 돼있다.장한나(첼로)와 함께 2악장 연주를 끝낸 아이작 스턴(바이올린)이 슬그머니 장영주에게'바통'을 넘겨줄 참이었지만 여기서도 박수를 제지할 수는 없었다.악장마다 연주자를 바꾸는 일은 공연사상 유례가 없는 일. 후반부에서 연주된 모차르트의'바이올린 소나타 C장조'3악장(아이작 스턴-헬렌 황),모차르트의'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E장조'1악장(예핌 브론프만-헬렌 황)등은 단악장만 연주한 까닭에 감동이 무르익다가도 식어버리는 아쉬운 워밍업의 연속이었다.앙코르곡'그리운 금강산'이 끝난 후 커튼콜은 단 두차례에 불과했다.신영옥은 소프라노 조수미의 단골 레퍼토리인 들리브의 오페라'라크메'중'종의 노래'를 들고 나왔지만 감칠맛 나는 뉘앙스를 들려주지는 못했다.바이올리니스트.첼리스트.피아니스트 2명씩에다 소프라노 1명등 모두 7명이 출연해 들려준 프로그램은 앙코르까지 모두 10곡으로 2시간20분이 걸렸다.

그러나 연주 시간보다 지휘자.연주자가 무대를 출입하면서 악수와 키스를 나누는 시간과 무대 세팅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비싼 돈을 들여 편곡을 위촉한'보칼리즈'와'그리운 금강산'은 악기편성 때문에 이번 연주로 생명이 끝나는 1회용 작품이었다.따라서 작품에서 편곡자의 열성이 느껴지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날 공연은 TV생방송을 염두에 둔 프로그래밍이었다.한 악장만 발췌해 들려주는 것은 방송에서 자주 하는 일이 아닌가.악장을 마구 발췌해 연주하는 것이 갈라콘서트는 아니다.축제적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연주자들의 기량을 십분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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