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큐 인터넷” … 유선전화기가 부활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습관처럼 유선전화 대신에 휴대전화기를 집어들기 일쑤다. 편리한 휴대전화 등쌀에 요금이 더 싸면서도 국내 유선전화 가입자는 지난해 1997년 4월 11년 만에 2000만 가구를 밑돌았다. 이러다 장차 유선전화기 만드는 회사들이 차례차례 문을 닫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유선전화기 시장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인터넷 덕분이다. 근래 요금이 저렴한 인터넷 전화가 확산되는 데다 지난해 말엔 인터넷 전화에 번호이동제까지 도입해 더 편리해지면서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LG데이콤·삼성네트웍스·스카이프 등에 이어 올해는 국내 최대 통신회사인 KT까지 인터넷 전화 서비스에 나섰다. ‘유선전화기는 이제 사양산업’이라고 느긋하게 지켜보던 휴대전화기기 회사들까지 유선전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LG-노텔·서울통신기술·다산네트웍스에 이어 팬택·SK텔레시스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불황에 더 인기=구매력이 위축되자 인터넷 전화 시장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휴대전화는 물론 기존 유선전화보다 통신비가 싸 기업이건 가계건 할 것 없이 인터넷 전화로 비용 절감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말 인터넷 전화에도 번호이동제를 도입한 뒤 가입자가 더 몰렸다. 써오던 유선전화 번호를 놔두면서 인터넷 전화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전에는 인터넷 전화를 쓰려면 ‘070’으로 시작되는 새 번호를 받아야 했다. LG데이콤의 박형일 대외협력담당 상무는 “번호이동제는 불 붙는 인터넷 전화 시장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평했다. 그는 “올해부터 가정에서도 보급이 크게 늘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IDC에 따르면 지난해 3641억원이던 국내 인터넷전화 시장은 3년 만인 2011년에 1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전화기 시장도 덩달아 물을 만났다. 단말기 업계는 지난해 150만 대인 유선전화기 시장이 올해는 두 배인 300만 대까지 급증할 것으로 추산했다.

◆사양사업이 유망 사업으로=유선전화기가 인터넷 덕분에 다시 뜨자 시장쟁탈전도 치열하다. 팬택씨앤아이는 지난해 말 유선전화 단말기 생산에 나서 LG데이콤에 공급하고 있다. 팬택씨앤아이의 최기창 사업본부장은 “ ‘스카이’라는 기존 휴대전화기 브랜드 인지도를 배경으로 해외 유선전화기 시장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장비를 개발하는 SK텔레시스도 올 들어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이 회사의 정대련 홍보담당은 “매출·수익 면에서 큰 비중은 아니지만, 구매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짭짤한 신규 사업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유선전화기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기존 유선전화기는 음성통화 기능만 잘 되면 됐지만 인터넷 전화기를 만들려면 소프트웨어 등 여러 분야에서 고난도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이 우리 기업들엔 좋은 진입장벽이 된다.

삼성네트웍스의 정혜림 홍보팀장은 “인터넷 전화기는 휴대전화기의 기본 기능은 물론이고, 고화질 영상통화나 무선랜·인터넷 서비스를 갖춘 첨단 기종까지 출시됐다”고 말했다. “원가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을 누비는 중국도 당장 따라오기 힘든 분야”라는 이야기다. 인터넷 전화용 유선전화기는 10만∼30만원대다.

이원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