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감성적 민생정책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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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이 인터넷 네티즌들의 공세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에 대한 연금법 시행령 개정 움직임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정부.여당의 혼선이 비근한 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란 대부분 젊고 합리성보다는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 정부 정책이 지나치게 감성적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정부부처 손발 안맞기 일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부 정책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즉 어떤 정책에 대해 경제부처 간, 재경부와 청와대 간, 정부와 여당 간에 의견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정책에 대해선 정부 내에서 신중한 검토를 먼저 거치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은 다음 발표해야 하는데 다양한 정부부처와 여당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발표하기 때문이다. 여러 부처가 관련된 경제정책의 경우엔 사안별로 발표 창구를 단일화하고 충분한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경우 총선 때 표를 의식해 여당이 그러한 정강정책을 발표했더라도 선거 후엔 좀더 철저한 검증을 거친 다음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나 재정경제부로 하여금 발표하게 하였다면 문제가 덜 심각했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어떤 정책에 대한 확실한 경제적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목소리 큰 사람들이 몇 번 소리지르거나 인터넷에서 시끄럽게 문제를 제기하면 금방 흔들려 버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최근 경제상황의 악화로 서민층이 연금보험료 납부를 어려워하는 것은 백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란 것이 결국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고 사회보험의 특성상 강제 징수하지 않으면 보험제도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연금보험료 징수상의 일부 문제로 사회복지제도의 근간인 국민연금제도를 폐지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위험한 발상에 대해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미봉책으로 네티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수지 불균형이란 구조적 문제점으로 장차 고갈 위험이 있는 국민연금제도는 보다 근본적으로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정치권과 정부 모두 두 손놓고 있으면서 일부 네티즌의 지엽적 불만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제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세금과 달리 기본적으로 낸 만큼 돌려 받는 보험 제도이기에 지금 당장 경제사정이 어려워 연금 납부를 유예받을 수 있겠으나 결국 노후소득이 줄어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함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민연금 재정을 건전화하는 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관해선 부동산가격 안정을 이루려는 여당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4.15 총선 전에도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경고했듯 수익이 줄어든 건설회사들이 주택공급을 줄여 주택가격을 올리거나 부실공사를 하게 되어 결국 집없는 서민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이러한 경고를 여당이 뒤늦게 이해하고 분양가 공개 불가 방침을 밝힌 것까지는 책임있는 여당의 자세다. 그러나 개혁의 후퇴라는 네티즌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빗발치자 즉시 정책을 뒤집는 단견적 행태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스스로의 정책개발 능력을 의심받게 하는 것이다.

***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참여정부가 소외계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정책개발 단계부터 그 정책의 효과와 문제점을 이론적.실증적으로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민생을 위한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은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접근할 때 가능하다. 지금 우리 사회엔 따뜻한 가슴만을 가지고 감성적인 정책이 마구 제시되고 있다. 부유세, 기업의 사회공헌 기금, 교육평준화 강화, 담배세 인상을 통한 사회복지비 증가 등….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신중하게 도입되지 않으면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되고 그러한 정책이 돕고자 하는 대상들이 오히려 불이익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한국재정.공공경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