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욕심없는 미나리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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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동 신도시로 이사온 뒤 비교적 가까워진 강화장터에 가보고 싶었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아침 강화장터를 향해 집을 나섰다.

강화장터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좌판을 벌이는 아낙들의 모습이 분주했다.설레고 즐거운 마음으로 좁은 장터길을 따라 걸으며 갓 뜯어온 쑥이며 취나물.한약재 등이 쌓인 좌판을 둘러보았다.아픈 다리를 쉬며 앉아 먹은 멸치국물 국수의 맛은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 손에는 어느덧 산나물.강화순무 등이 들려 있었고 내내 찌푸리고 있던 하늘에서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시장어귀에 할머니 한 분이 아직 팔지못한 돌미나리 무더기를 앞에 두고 우산도 없이 앉아 계셨다.

“할머니 미나리 좀 주세요”하고 말하자 할머니는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한웅큼 미나리를 봉지에 담으려고 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옆자리에서 오이를 사고 있던 상복차림의 아주머니 두분이 나를 와락 떠밀며 “미나리 우리가 다 살거니까 딴 데가서 사지 그래,할머니 이거 다 가져갈게.2천원에 떨이하지 뭐”하며 할머니 손에서 봉지를 빼앗다시피해 미나리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아무리 못해도 미나리는 5천원어치는 넘음직했다.나는 어이가 없어“아주머니 제가 사고도 충분하니 나중에 사세요.할머니가 애써 키운건데 너무 싸게 가져가는 것 아녜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사람은“젊은 사람이 말을 못알아들어.우리가 다 떨이로 산다니까.서울에서 여기까지 싸게 사려고 왔지 그냥 왔는가”하며 2천원을 던지다시피 하고는 길가에 서있던 장례 버스에 올랐다.힘이 없는 할머니는 작은 목소리로“안돼,안돼 그러지마… 그렇게는 못팔아”를 말할 뿐이었다.그러더니 이내 나에게 미안해하며 쓸쓸히 좌판을 챙기셨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도 그렇게 작은 탐욕을 부려야했을까.'오늘은 너무 손해를 봤네'하며 돌아서는 할머니의 소박한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박하영〈경기도부천시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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