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축구, 어이없는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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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강의 기대는 무리가 아니며,잘 하면 83년의'멕시코 4강 신화'의 재현도 기대해볼만 하다.”말레이시아 쿠칭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둔 축구계와 선수단의 다짐은 이랬다.국민들조차 이런 찬사에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그러나 한국시간 22일 오후 중계방송을 보고 들은 축구팬들은 차라리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선 B조에서 1무2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탈락했다든가,최종전에서 브라질에 대회 사상 최대실점하며 10대3으로 대패했다든가 하는 결과만 가지고 하는 푸념이 아니다.브라질에 이기리라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테니 그 패배와 예선탈락은 미리 정해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제는 1무1패를 안고 브라질전에 임한 선수단의 자세였다.질 때 지더라도 한번 해보겠다는 투지나 의욕은 전혀 찾을 길이 없었고,그라운드에서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실망보다는 차라리 분노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탓하기보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축구가 세계축구,특히 미래의 축구판도를 가름할 세계청소년축구의 발전적 변모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워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새로운 전략.전술도 개발하지 않은채 주먹구구식 평가로만 대회에 임했으니 결과는 당연한 셈이다.한국 선수들을 가리켜'생각없는 로봇들'이라 표현한 현지 한 신문의 혹평이 한국 청소년팀의 참모습은 아니었을까. 이 청소년팀이 5년후 한국이 주최할 2002년 월드컵의 주축을 이루게 된다면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획기적 변화를 보이지 않는한 이번의 망신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지금 우리가 청소년팀이나 축구계 전체에 바라는 것은'연전연승'이 아니다.'끊임없이 연구하는 축구''어떤 대회에서나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축구'를 보여달라는 것이다.'실력차이'라는 한마디 말로서는 어떤 패배도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깨닫지 않고선 한국축구는 회생할 수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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