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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속의홍콩>사라지는 대만촌 레니즈밀 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르릉,와지끈 꽝'-. 불도저의 힘찬 굉음 밑으로 멀쩡한 집이 수수깡 더미처럼 힘없이 넘어간다.아담하게 솟아 있던 동산도 쉽게 뭉개진다.50년동안 대대손손 꾸며온 마을 하나가 평지로 변하는데는 불과 몇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홍콩의 대만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대만적이었던 레니즈밀 마을(調景嶺村)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다.1949년 장제스(蔣介石)휘하의 국민당 패전군이 모여 자연부락을 이뤘던 마을,매년 쌍십절만 되면 대만의 청천백일기로 뒤덮였던 이 마을이 홍콩반환을 앞두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명분아래 멀쩡한 마을이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짓누를듯 다가서는 중국의 거대한 기세에 배겨날 도리가 없었던 탓이다.

반환을 정확히 15일 앞둔 16일.빗속을 뚫고 찾은 레니즈밀 마을에는 폐허속을 헤집고 있는 불도저와 크레인의 모습만 가득했다.옛날의 모습은 모두 사라져버린 무(無)의 벌판.유명했던'돼지와 관리들 출입금지'란 표지판과'장제스총통 만세'란 표어,그리고 마을 상징이었던 청천백일기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산천'은 그렇다치고'인걸'은 어디 갔을까.50년이 넘게 레니즈밀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했던 국민당 노병(老兵)들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재개발본부를 찾았다.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직원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다린이 유창하다.대륙출신인 것이다.

“여기 살던 국민당 노병들을 찾으십니까.”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진다.

“지난해 가을부터 대부분 장쥔아오(將軍澳)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수소문끝에 장쥔아오의 더안러우(德安樓)아파트에서 만난 중원푸(鍾文甫.70)옹은“국민당 광동군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대만이 10여년전에 발급해준 난민동포 등록증을 꺼내보였다.

옆에 앉아 있던 자오궈둥(趙國棟.78)옹은 레니즈밀 마을에 지난 49년부터 국민당 패잔병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때 1만여명 가량의 국민당 노병들이 살았다고 회고했다.

“나는 상하이(上海)가 고향입니다.40년 국민당 제5집단군에 입대했습니다.당시 총사령관이 그 유명한 두위밍(杜聿明)장군이지요.49년 화이하이(淮海)전투에서 패해 부대가 해체됐어요.그때 홍콩 레니즈밀 마을로 도망나왔지요.” 趙옹은“61년 홍콩정부로부터 거주권을 인정받았는데 84년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성명이 체결되자 홍콩정부로부터 나가달라는 압력이 심해졌다”고 말하고“우리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88년 재개발 판정이 나고 말았다”며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재개발 결정 이후에도 주민들이 조금도 움직일 기색이 없자 홍콩정부는 93년 마을의 학교와 소방서를 폐쇄해버렸다.월세를 내지 않는 세입자에게 단수.단전조치를 취한 꼴이다.

대만정부도 이들을 외면했다.노병 1인당 25달러씩 매월 지급하던 보조금을 96년6월 끊은 것.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래도 노병들은 굴복하지 않았다.노병들은 홍콩정부와 법정투쟁까지 벌인 끝에 지난해 8월 평방미터당 7천홍콩달러(약 84만원)의 이주비를 얻어냈다.

“재개발이 끝나도 다시는 청천백일기가 올라가는 일은 없을거요.그곳서 나올 때 노병들 대부분이 청천백일기를 버리고 나왔기 때문이지요.” 鍾옹의 쇠약한 음성에서 욱일승천으로 떠오르는 중국 기세에 눌린 대만의 왜소한 현실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홍콩반환을 앞두고 재개발계획으로 철거된 레니즈밀 마을의 옛모습.친대만

마을답게 곳곳에 청천백일기가 나부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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