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파 탓? … 제주 ‘신구간 이사’ 잠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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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1월 하순~2월 초가 되면 제주도에선 ‘인구 대이동’이 벌어진다. “이 시기에 집을 옮기면 손이 없다”는 토속신앙에 기초한 제주 전래의 ‘신구간(新舊間)’ 풍습 때문이다. ‘손’은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을 일컫는다.

4~5년 전만 해도 제주도 전체 가구의 2~3%인 5000~6000여 가구가 이 시기에 이사했다.

하지만 올해엔 상황이 사뭇 달라지고 있다. 경제난을 반영, 이사 수요가 생기는 신규 입주 물량이 거의 없는 데다 부동산 거래마저 뚝 끊긴 결과다. 제주시 도남동에서 D부동산을 운영하는 강승훈(42)씨는 “신구간을 앞둔 2~3개월 전부터 많게는 하루 20건의 집 계약 문의가 이어졌지만 지난 연말부터 하루 10건이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신구간 중 나오는 폐기물은 예년의 70% 수준인 하루 590t에 불과하 다. 이용철 제주도 생활환경과장은 “경제난에 설 명절이 겹치고, 굳이 풍습을 고수하지 않는 신세대의 세태도 강해져 올해 신구간에는 2500~3000여 가구만 이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때쯤 ‘대목’을 누렸던 업계도 울상이다. 제주시 연동 ‘이사나라’의 조성우 실장은 “신구간 이사 예약을 한 고객이 지난해의 절반 선으로 뚝 떨어졌다” 고 말했다. 제주대 현승환(국어교육과) 교수는 “농한기 겨울철 노동력 활용과 한 해를 결산하는 절기 특성을 빌려 집을 옮기는 풍습이 민간신앙으로 이어졌다는데 퇴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신구간=조선조 이래 제주에 이어져 온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이란 토속신앙에서 유래한다. ‘신구간’은 약칭이다. 대한(大寒) 5일 뒤(1월 25일)와 입춘(立春) 3일 전(2월 1일) 사이로 인간사를 관장하는 1만8000여 신(神)이 한 해의 임무를 마치고 천상으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한 해의 활동상을 보고하고, 새 임무를 맡는 신·구관 교체기다. 지상에 귀신이 없으니 이때 집을 옮기면 액이 따르지 않아 탈이 없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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